퇴직해야만 받는 돈, 퇴직연금의 모든 것

누구에게나 ‘퇴직’의 순간은 찾아오기에.

한창 일할 나이인 베짱이 대리에게 아직 ‘퇴직’은 낯선 단어다. 퇴직과 퇴사. 뜻은 비슷하지만, 단어가 주는 느낌은 전혀 다르다. 퇴사가 ‘중퇴’라면, 퇴직은 ‘졸업’에 가깝다. 내가 가진 노동력의 사회적 유효기간이 다 됐다는 거니까. 슬프지만 실망할 필요는 없다. 우리에겐 노후를 책임져줄 ‘퇴직연금’이 있기 때문!

참을 수 없는 지갑의 가벼움

월급쟁이의 지갑은 늘 가볍고 얄팍하다. 결혼해 애까지 있으면 월급은 잠시 스쳤다 사라지는 존재요, 저축은 아무리 뻗어도 닿지 않는 하늘의 별과 같다. 월급이 한 달이라도 끊길 경우 가족 전체가 보릿고개 행 예약이다. 요즘엔 기대수명 증가로 퇴직 후 벌이까지 걱정해야 할 판. 이에 국가는 떠나는 노동자에게 회사에서 일정 금액을 지급하는 법(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 이하 ‘보장법’)을 만들었는데, 이 돈이 퇴직급여 되시겠다.

퇴직연금은 퇴직급여를 지급하는 방식 중 하나다. 보장법에 따르면, 회사는 1년에 주 15시간 이상 근무한 모든 노동자에게 퇴직급여를 줘야 한다. 어떻게? 급하게 회사 금고에서 끌어오거나, 금융기관과 협약을 맺고 회삿돈 일부를 맡겨 놨다가 필요할 때 꺼내서 주거나. 첫 번째를 퇴직금, 두 번째를 퇴직연금이라고 한다. 회사는 둘 중 하나를 골라 근로자에게 지불한다.

모험보다 안정, DB

퇴직연금은 확정지급형(DB), 확정기여형(DC), 개인형 퇴직연금(IRP) 3가지 종류가 있다. 셋 다 일시금 또는 연금(55세 이후) 형태로 수령이 가능하다.

먼저 확정지급형(Defined Benefits)은 근로자가 받을 연금 금액이 이미 확정된 연금이다. 회사가 금융기관에 돈을 맡기면, 금융기관은 이를 투자금으로 활용한다. 손해가 발생하면 회사가 메우고, 이익이 발생하면 회사와 금융기관이 나눠 가진다. 근로자는 투자 결과와 관계없이 회사가 정해놓은 금액을 퇴직연금으로 받는다. DB형 퇴직연금을 구하는 공식은 다음과 같다.

DB형 = 퇴직 전 3개월간 평균임금 × 근속 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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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형은 손실 책임이 회사에 있기 때문에 수익률이 낮은 안전자산 위주로 투자된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19년 시중은행의 퇴직연금 연간 수익률은 DB형의 경우 1.48%에 불과했다. 이는 한국은행 기준금리(1.50%, 2019년 10월 기준)보다 낮을 뿐만 아니라, 지난해 연평균 물가 상승률(1.5%)과 비교하면 사실상 마이너스 수준이다.

DB형은 국내 퇴직연금 시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2017년 말 전체 퇴직연금(약 167조 원) 가운데 67%가 DB형이었다(자본시장연구원). DB형 비중이 높은 건 퇴직연금이 처음 도입된 2005년 당시 가입자 대부분이 안정적 운용을 선호하는 대기업과 공기업이었기 때문. 현재는 시간이 지나며 DC와 IRP 가입 비중이 많이 늘어났다.

내 돈은 내가 관리한다, DC

확정기여형(Defined Contribution)은 회사가 원금 적립을 부담하되, 운용은 근로자가 책임지는 연금이다. DC형은 DB형과 크게 2가지가 다르다. 첫 번째는 계산 방식이다. DB형은 퇴직 전 3개월 치 평균임금, DC형은 매년 연봉을 12개월로 나눈 금액이 정산 기준이다. 이 차이는 연금 산정 결과에 큰 영향을 끼친다.

DC형 = 매년 임금총액의 1/12 ± 운용 수익
(자세한 산정 과정이 궁금하다면 Click!)

예를 들어보자. 베짱이 대리는 1년 차 연봉이 1,200만 원(상여, 수당 무시)인 회사를 5년간 다니다 최근 그만뒀다. 매년 임금상승률을 5%라고 가정할 때, 베짱이 대리의 DB형 퇴직연금은 마지막 해 월급(100 ☞ 105 ☞ 110 ☞ 116 ☞ 122)인 122만 원에 근속기간 5년을 곱해 610만 원이 된다.

같은 조건을 DC형으로 환산해보자. 퇴직금은 553(100+105+110+116+122)만 원+α(운용 수익)로, 고정 금액만 따지면 약 60만 원의 차액(610-553)이 발생한다. 만약 근속기간이 더 길고, 퇴직 전 연봉인상률이 높다면 차액은 훨씬 벌어질 것이다. 즉, 회사를 오래 다녔고 연봉 수준이 높으면 DB형, 그 반대라면 투자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DC형이 유리하다는 것. 여기서 DB형과 DC형의 두 번째 차이점을 알 수 있다. 원금 손실 가능성이다.

DB형은 정해진 금액을 받기 때문에 추가 수익도 없지만, 원금을 잃을 일도 없다. 하지만 DC형은 개인의 연금 운용 실적에 따라 원금보다 벌거나 잃을 수 있다. 또 운용 성과가 매년 퇴직연금 산정에 반영되기 때문에 복리 효과를 기대할 수 있고, 추가 납입이 가능하다. 이런 이유로 DC형은 퇴직연금을 재테크 수단으로 고려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

개설부터 운용까지 내 마음대로, IRP

개인형 퇴직연금(Individual Retirement Pension)은 재직 중인 근로자가 자율적으로 가입하는 연금이다. 이직, 퇴직 뒤에도 계속 돈을 적립하고 운용할 수 있다. DB, DC형은 가입 주체가 회사이기 때문에 퇴사와 함께 해지된다. IRP는 개설 기관(은행, 증권사) 선택부터 운용까지 모든 과정이 가입자 자유다. 2012년 7월 26일 보장법 시행령이 개정되면서 300만 원 이상의 퇴직연금은 55세 이전 수령을 원할 경우 IRP 계좌를 만들어야만 받을 수 있다.

IRP는 상시 근로자 10명 미만 회사가 가입하는 ‘회사형’과 ‘개인형’으로 분류되는데, 가입 주체(회사, 개인) 외에 내용 면에선 거의 다른 점이 없다. IRP의 연금 산정 방식은 DC형과 유사하다.

IRP형 = 원금(IRP 회사형 퇴직연금, DB/DC 퇴직연금 등) ± 운용 수익

IRP의 특징으로는 3가지를 꼽을 수 있다. 1) 넓은 가입대상 2) 세액공제 3) 과세이연이다.

IRP는 기존 DB, DC 가입자뿐 아니라 퇴직급여 중간 정산자, 자영업자, 1년 미만 근속 및 단시간 근로자, 퇴직금제도 적용 재직 근로자, 직역 연금(특정 직업만 가입 가능한 연금) 수령자도 가입(중복가입 포함)이 가능하다. 사실상 소득이 있는 모든 사람에게 가입 기회가 제공된다.

특히 세액공제 혜택은 IRP의 알파와 오메가다. IRP는 연간 1,800만 원까지 납입 가능하고, 이 가운데 최대 700만 원까지 세액공제 대상이 된다(연금저축 가입자는 연금저축과 합산해 최대 700만 원까지 세액공제). 쉽게 말해 700만 원에 붙을 기타소득세 16.5%(연봉 5,500만 원 이하 기준, 이상은 13.2%)를 환급 받을 수 있다. 환산하면 115만 원 정도로, 웬만한 상위권 주식 종목 뺨치는 수익률이다.

과세이연도 빼놓을 수 없는 장점이다. 과세이연은 세금 납부 시점을 뒤로 미뤄주는 것을 말한다. IRP는 퇴직연금 운용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자소득세(15.4%, 2,000만 원 미만 기준)와 연금에 붙는 퇴직소득세를 연금을 받을 때 뗀다. 이자가 원금으로 재투자되기 때문에 DC형처럼 복리 효과를 누릴 수 있다. 단, 이 혜택을 받으려면 퇴직급여의 100분의 80 이상을 IRP 계좌에 보관해야 하고, 퇴직한 날로부터 60일 이내에 납입해야 한다.

다만 큰 힘에는 책임이 따르듯, 큰 혜택엔 대가가 존재하기 마련이다. IRP는 중도해지 시 세액공제로 환급받은 금액을 반납해야 하고, DC형과 마찬가지로 원금 손실 위험이 있다. 웬만하면 해지하지 않는 게 좋다는 얘기. 다음 편에서는 주택 담보와 연금의 만남, ‘주택연금’에 대해 알아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