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LE’ 앞에 흔들리는 그대에게

예산 계획을 안 세우는 건 아니었다. 다만 지키지 못했을 뿐.

계획하는 ‘나’ vs 쓰려는 ‘나’

항상 새해가 되면 ‘조금이라도 아껴 살아야지’라고 마음 먹지만 쉽지가 않다.  마음을 먹는 건 그 자체로 대견하지만, 그걸 해나가는 건 또 다른 문제다. 돈을 아껴쓰자고 계획을 세운 것도 ‘나’이지만, 정작 그 돈을 흥청망청 써댄 것도 ‘나’. 내 가계부 앱만을 보자면 ‘계획을 세운 이성적인 나’는 ‘돈을 쓰는(실행을 하는) 감정적인 나’에게 처절하게 밀린 것이다.

“내가 이성적이라는 편견(?)을 버리자.”

2017년의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는 리차드 세일러(Richard Thaler) 교수였다.  <넛지>라는 책을 쓴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한 그의 연구는 인간의 감정적이고 심리적인 면을 고려해 경제현상을 다루는 행동경제학적인 관점을 취한다. 인간은 누구나 합리적인 행동과 판단을 한다는 전제에 기반한 표준 경제학의 대척점에서 경제학에 심리학을 접목한 행동경제학이 떠오르는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인간은 감정의 동물인데, 표준경제학에서는 항상 ‘합리적 행위자’로 간주한다, 그러니 항상 현실과 간극이 생긴다.

그걸 단적으로 보여주는 게 바로 1년 간의 내 가계부였다. 저축을 얼마나 해야지, 소비는 이만큼 줄여야지. 라는 계획을 안 세운 게 아니다. 다만 그걸 그대로 하기엔 너무 많이 흔들렸을 뿐. 생각해보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커피 한잔을 안 마시면 얼마를 모을 수 있다’ 같은 짠테크 팁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안쓰면 모인다’는 걸 몰라서 안하는 게 아니니까. 야생마처럼 안달이 난 내 안의 자아를, 그 거친 소비 심리를 달래는 게 더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해서 이 시리즈에서는 행동경제학적인 관점에서 우리의 소비 심리를 하나하나 다뤄보려고 한다.

다시 한 번 가만히 가계부 APP을 들여다 보다 깨달았다. ‘나레기’의 그 거친 소비 심리를 자극하는 트리거가 무엇인지.

“필요하진 않지만, 세일이니까.”

2012년, 미국의 유명 백화점 JC 페니는 새로운 CEO가 오면서 한층 정직한 가격 정책을 선보이기로 했다. 일단 가격을 높인 다음에 쿠폰을 주거나 할인가를 표기하는 대신, 기존의 할인가와 비슷한 수준의 정상가 가격표를 붙였다. 결과는? 1년 만에 JC페니는 매출 하락으로 9억 8500만 달러는 손해를 봤고 새로운 CEO는 해고가 되었다. 그 후  JC페니는 다시 가격의 60%를 인상시키고선 그 옆에 다시 할인 가격을 적기 시작했다. 마치 엄청난 할인 행사를 하는 것처럼. 그리고 그들의 매출은 제자리를 되찾았다.

멍청해 보이지만, 그게 나였어.

저런 에피소드를 들으면 미국의 소비자들이 한심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런데, 내 가계부 앱을 보자면 그게 나다. 옷장에 아우터와 티셔츠가 차고 넘치는데도 ‘클리어런스 세일’, ‘최대 70% 할인’ 따위의 문구를 보면 조건 반사적으로 움직인다. 파블로프의 개가 따로 없다. 그렇게 혹해 사놓은 옷들이 마치 팬톤 컬러 차트마냥 비슷비슷한 그라데이션으로  옷장을 채운다. 문제는 저런 문구들을 대할 때면 ‘이성적인 나’ 또한 이상한 사고 회로를 돌린다는 점이다.

“이봐~ 50만원짜리가 5만원이잖아. 45만원이나 버는 거라고.”

아니다. 그렇지 않다. 5만원은 5만원이다. 1000만원짜리가 99.95% 할인해서 5만원이라고 해도 5만원은 5만원이다. 딱히 필요하지도 않고, 언젠간 쓸 거라고 자신을 납득시키지만, 사실 별로 살 생각도 없던 물건을 사는 데 5만원을 날린 것이다. 어쩌면 내가 사는 것은 ‘물건’이 아니라, ‘무언가를 싸고 합리적으로 구매하는 스마트함’이라는 이상한 쾌감일지도 모른다.  막상 비슷한 레벨의 다른 브랜드들도 검색해보면 가격은 고만고만하다. 그렇다. ‘의미없는 정상가’의 세계는 그렇게 우리를 현혹한다.

사실 ’50만원’이라는 숫자는 ‘5만원’이 상대적으로 싸게 보이게 만들기 위한 ‘상대성’의 술책일 뿐이다. 할인율이 커보인다고 현혹되어서는 안된다. 지불해야 하는 금액의 절대값을 항상 떠올리자.그리고 지금 사려고 하는 물건이 그 정도 댓가를 지불할 만큼 필요한 것인지 스스로에게 되물어보자. 그리고 그 ‘5만원’으로 할 수 있는 또 다른 것들, 그 ‘기회비용’에 대해 생각할 필요가 있다.’5만원’은 언제나 ‘0원’보다는 크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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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쓰고 있는,  지금도  ‘2018 굿바이 클리어런스 세일’ 배너를 클릭하려는 ‘나’. 올해도 ‘계획하는 나’와 ‘돈을 쓰려는 나’ 사이의 투쟁은 계속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