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출 예산을 관리한다는 착각, 심리적 회계

꼼꼼하게 관리하기 위해서 지출 항목별로 예산을 정하곤 한다. 이성적이고 계획적인 ‘나’는 그런 예산 관리를 통해서 지출을 관리할 수 있을 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꼼꼼함에도 때론 함정이 있다.

계획적인 예산 설정의 함정

요즘 가계부 APP들은 지출 항목을 나눌 수 있고, 또 각각의 항목별로 예산의 한도를 설정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어느 항목에서 지출이 많아지면 알람이 뜨기도 한다. 나름 합리적이고 계획적으로 지출을 관리하도록 해주기 위한 기능들이다.

그런데 그런 기능을 쓰다 보니 월말이 되면 조금 이상해진 나를 발견하게 된다. 예를 들면 용돈중 ‘간식,음료’ 부분의 예산이 간당간당해지면 오후에 배가 고파도 괜히 참는다. 평소라면 나가서 토스트라도 하나 사왔을 텐데. 그런데 ‘패션의류’ 부분의 예산은 남아 있다. 괜히 딱히 필요도 없는 옷들을 구경하러 쇼핑 사이트를 드나들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배고픔을 꾹꾹 참아가며.

돈에 어떤 ‘이름’을 붙였는가

우리는 알게 모르게 우리가 가진 돈에, 똑 같은 1만원이라고 해도 동일한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다. 애초에 자신이 담아 놓은 계정 항목에 따라서 그 돈을 써도 될지 아닐지를 판단하는 경우가 많다. 즉 동일한 금액임에도 불구하고 지출 범주에 따라 다른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다. 소위 우리 마음 속에서 ‘심리적 회계’라는 현상이 벌어지는 것이다.

‘심리적 회계(Mental Accounting)’라는 개념을 처음 소개한 사람은 바로 베스트셀러 <넛지(Nudge)>의 저자인 리차드 탈러(Richard Thaler) 교수다. 이 개념의 특징은 사람들이 개인적으로 돈을 쓰면서도 마치 회사나 기관에서 예산을 집행하고 운용하듯이 한다는 것이다.
기업에서라면 그렇다. 특정 부분의 예산을 다 써버리면 그 항목을 보충하기가 꽤나 어렵다. 반면 회계 기간이 끝날 때까지 남아 있는 항목의 예산은 왠지 안 쓰면 불안하다. 애초에 예산 계획을 잘못 짠 거 같고, 다음 연도에 그 예산의 항목이 줄어들까 걱정도 된다. 그러니까 괜히 어떤 이유를 만들어서든 다 써버리게 된다.

어차피 ‘그 돈이 다 내 돈’

개인이 이런 심리적 회계를 하는 단적인 예는 들자면 카지노에서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다. 10만원을 코인 10개로 바꾸었다고 하자. 코인 5개는 날리고 5개가 남았는데, 별로 더 게임이 하고 싶지 않으면 그냥 다시 현금으로 바꾸면 된다. 그런데 이미 내 마음 속에서 이 10만원은 ‘유흥비’ 항목으로 분류되었기에 다 써도 되는 돈이다. 그래서 그냥 게임을 계속해서 써버린다. 그리고는 막상 카지노를 나와서는 저렴한 식당을 찾는다. 왜냐하면 오늘은 이미 10만원이나 썼으니까.

개인이 이런 식으로 ‘심리적 회계’를 통해 자신의 돈을 쓸 때의 문제는 너무 명확하다. 사실 예산의 어느 항목으로 분류했던 그 돈이 다 ‘내 돈’이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자신의 소비를 합리화하기 위해 마음 속에서 일종의 ‘회계 부정(?)’을 저지르는 경우도 적지 않다. 어딘가로 여행을 왔는데 이미 여행비 예산 내에서 식비로 잡아둔 부분은 이미 다 쓴 상황이다. 그런데 또 특산물이 먹고 싶어진다. 그러면 슬그머니 ‘용돈-식비’ 혹은 ‘생활비-식료품비’의 예산이 남았는지 떠올린다. 그리고는 슬쩍 이번 지출은 ‘여행비’ 계정에서 ‘용돈-식비’계정으로 옮긴다.

애초에 이런 사고 회로를 돌리는 목적은 원래 계정(ex.여행비)에서 다른 계정(ex.용돈)으로 지출 항목을 심리적으로 옮겨두고서는 소비의 죄책감을 줄이는 것이다. 그래서 때로는 가상의 지출을 줄이면서 합리화를 하기도 한다. “내년에는 여행을 안 가려고 했으니까 그 여행비를 쓴 셈 치지, 뭐” 이런 식이다.

계정 항목을 단순화하라

<부의 감각>의 저자인 행동경제학자 댄 애리얼리는 이러한 소비습관에 대한 대책으로 ‘재량지출’이라는 폭넓은 범주에 속하는 항목을 설정하고, 한도를 정하라고 충고한다.

  • 유행하는 패션의류, 술값처럼 없어도 살아가는데 지장이 없는 항목들로 구성하라.
  • 그러니까 공과금이나 식료품 같은 필수 생활비는 포함시켜서는 안 된다.
  • 한 주 단위의 재량지출 한도액을 정한 다음 체크카드에 넣어둘 것.
  • 주 단위로 다시 한도액을 충전하라.

물론 이렇게 한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이제는 ‘재량지출’의 예산이 남았을 때 마저 쓰고 싶은 유혹이 생길 테니까. 다만 심리적 회계를 통해 스스로의 소비를 합리화할 수 있는 여지는 상대적으로 줄일 수 있다

항상 기억할 것은 딱 하나다. 스스로 어떤 항목으로 이름을 붙였던, 지금 쓰고 있는 그 돈이 바로 ’내 돈’이라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