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하우스에서 주식을 사고 팔았다?

뉴욕증권거래소도 그렇게 시작했다고 합니다

매일 아침 9시부터 오후 3:30분까지. 주식시장은 참 숨가쁘다. 장전, 장후 시간외 매매까지 생각하면 더 바쁠 테다. 그런 게 이 나라에만 있는 게 아니고 뉴욕에도 런던에도 홍콩에도… 여기저기 온 세상에 있다고 생각하면 그 거대한 매매 물량을 처리하는 게 참 대단해 보인다. 으레 당연하게 생각하지만, 그 거대한 시장이 그냥 뚝딱 생겨나지는 않았을 터. 그래서 한 번 알아보았다. 

세계 최초의 증권 거래소는 어디?

뉴욕도 런던도 아닌, 바로 1602년의 암스테르담이다.  증권거래소가 생겼다는 건, 거래할 주식이 생겼다는 의미이자 주식을 거래할 만큼이나 큰 주식회사가 생겼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 최초의 주식회사가 바로 ‘동인도 회사’다. 당시 네덜란드는 해상 강국으로 떠오르고 있었지만, 이 모든 사업을 정부가 하기에는 힘들었다. 그래서 정부는 해외 시장을 개척한 민간 자본을 모을 필요가 있었다. 그렇게 생겨난 것이 바로 동인도 회사.

동인도 회사는 아프리카 최남단 희망봉에서부터 아메리가 대륙 서해안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에서 요새를 쌓고 군사력을 행사하는 등 네덜라드 정부가 해야 할 일을 대신하였다. 대신 동인도 회사는 정부로부터 동양 무역의 독점권은 물론 군대 편성과 요새 축조 등의 권한까지 부여받을 수 있었다. 지금으로 따지자면 일종의 군산복합체였다고나 할까. 이런 군사적인 업무까지 민간 회사가 한다는 게 이해하기 힘들 수 있지만, 당시에는 적국의 상선이나 전함을 포획할 수 있는 권리를 개인에게 부여하는 사략선도 있던 시절이니 그럴 만도 했다.

동인도회사의 초대 주주는 암스테르담에서만도 1143명에 달할 정도. 이런 초대형 회사가 생겼으니 동인도 회사의 주식을 사고파는 거래소가 필요했던 것이다. 5년 후인 1607년에는 동인도 회사 주식의 3분의 1이 원래 소유주의 손을 떠났다고 하니 거래가 꽤 활발했던 편이라고 볼 수 있다.

심지어 게임에도 나온다. 출처 <대항해의 길>

트레이더 24명이 시작한 뉴욕증권거래소

지금은 세계 최대의 증권시장인 뉴욕증권거래소 (NYSE)도 그 시작은 참 소박했다.  1792년 4월 17일 24명의 증권 중개업자들이 모여 증권거래방법, 수수료율 등을 정한 협정에 서명한 ‘버튼우드 합의서’를 발표한 것을 그 시작으로 간주하고 있다.

사실 당시의 증권거래소는 딱히 거래소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지경이었다. 커피하우스에 모여서 중개인들이 주식을 사고파는 사람들을 연결해주는 상황이었다. 매일 정오에 증권 경매 시장을 열고 ‘Stcok Exchange Office’라 불렀으나, 정작 이곳에서 주문이 이뤄지는 경우가 드물었다고 한다.  왜냐하면 경매에 참석하여 경매 가격을 지켜본 중개인들이 자신의 사무실에 돌아가 더 낮은 수수료를 받고 주문을 체결해주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버튼우드 합의서는 이런 관행을 제재하기 위해 생겨났다. ‘어떤 주식을 거래하더라도 거래대금의 0.25% 이하의 커미션을 받지 않기’로 한다’가 그 주요한 내용이었다. 이 최소 커미션 조항은 1975년이 되어서야 폐지될 정도로 초기 증권거래소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지금은 글로벌 금융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는 뉴욕 증권거래소

우리나라 최초의 거래소는?

우리나라는 증권 시장이 발전하기 이전에 생겨났다. 그래서 그 거래 대상은 유가증권이 아니라 쌀과 콩이었다. 1896년 인천에 생겨난 미두취인소 (米豆 取引所). 요즘으로 따지자면 상품거래소였다. 현물 없이 10%의 증거금만 가지고 나중에 청산거래를 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으니 요즘의 선물 시장과 비슷한 모습이었다. 증거금 10%만 있으면 할 수 있었으니 레버리지 효과가 높았고 그만큼 투기성도 높았다. 해서 전국 팔도에서 찾아와 일확천금을 노리다가, 가산을 탕진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애초에 ‘미곡의 가격과 품질의 표준을 정하고, 미곡의 매집 경쟁에 따른 폐해를 방지하며, 이를 통해 미곡의 수출을 증대시키자’라는 거창한 설립 명분은 있었지만,  실제로는 일본 상인들이 주축이 되어 만든 거래소로 투기 거래에 익숙하지 못한 조선 상인들과 자본을 수탈하려는 목적도 없지 않았으니, 조금은 예상할 수 있는 결과였을지도 모르겠다.  

최초의 유가증권시장은 일제 치하인 1931년 조선취인소가 생기면서부터였다. 증일전쟁 등의 특수에 힘입어  군수산업 주식이 계속 늘어나면서 1938년에는 거래종목이 284 종목에 이르기도 했다. 해방 후 1956년 대한증권거래소를 설립되면서 지금 한국거래소의 시초가 되었다.

인천 미두취인소. 현재 인천 신포동에 있으며 국민은행의 지점으로 사용되고 있다. 출처 <인천일보>

무엇이든 다 팝니다

사실 거래소에서 주식만 파는 건 아니다. 예를 들면 시카고상업거래소 (CME, Chicago Mercantile Exchange)의 경우는 주가지수, 통화를 비롯하여 금리, 에너지, 농산물, 금속 등을 그 거래대상으로 하고 있다. 또 이와 관련한 다양한 선물과 옵션을 거래하고 있는데 심지어 날씨에 대한 선물 옵션도 있으니, 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것들은 다 상품화해서 팔고 있는 게 아닐까 싶을 지경이다.

이외에도 런던금속거래소 (LME, London Metal Exchange)의 경우는 구리, 알루미늄, 아연, 납 , 주석 니켈, 알루미늄 합금 등 비철금속을 전문으로 거래하는 거래소들도 있다.

거래소도 알고 보면 회사

종종 착각하게 되는 것 중에 하나가 증권거래소들이 공공기관이라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증권거래소들이 기본적으로 시장을 조직하고 감독하는 공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실제로는 수수료를 수익모델로 하는 하나의 회사들이다. 주식회사들을 위한 일종의 오픈마켓 운영자라고나 할까.(주식을 위한 G마켓이나 옥션이라고 생각하자). 그러니 그들 스스로가 거래소에 하나의 회사로 상장하거나, 효율화를 위해 거래소들끼리 합병하기도 한다.

세계에서 제일 큰 상품거래소인 시카고상업거래소(CME)는 현재 나스닥 시장에 상장되어 있다. 최근에는 홍콩증권거래소(HKEX)가 366억 달러(약 43조 7000억 원)에 런던증권거래소(LSE)를 인수하겠다는 제안을 해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홍콩증권거래소는 2012년에 런던금속거래소를 14억파운드에 인수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