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환자가 입힌 손해, 배상받을 수 있을까?

치매에 걸린 90세 남성 A 씨. 그는 부인이 잠든 새벽, 자택에서 나와 혼자 돌아다니다가 열차에 치여 사망했다. 갑자기 멈춘 열차 때문에 열차 승객들이 상해를 입었다면 유가족에게 손해배상 청구를 할 수 있을까? 

위 사건은 일본 아이치현 오부시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입니다. 우선 고인의 죽음을 애도하는 것이 먼저였겠지만 철도청은 치매환자의 유가족에게 피해 복구 비용 및 승객의 대체 교통비 등 720만 엔에 대한 손해배상을 청구하게 됩니다. 1심과 2심에서는 모두 유가족이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대법원까지 간 이 재판은 결국 마지막에 가서 판결이 뒤집어집니다.

감독 의무가 있는 배우자 나이가 고령이고,
자식은 동거하지 않는 상태이므로 손해배상의무가 없다.

라는 것이 재판부의 의견이었죠.

이 재판이 화제가 된 것은 일본은 이미 2007년에 인구의 30% 이상이 노인인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하였기 때문입니다. 자연스럽게 사회문제로 떠오른 것이 바로 ‘치매환자에 의한 물적 손해 사고’, 즉 치매환자로 인해 발생하는 다양한 사고들이었습니다. 자신의 행동을 합리적으로 판단할 수 없는 치매환자들, 해서 그들이 일으키는 사고들에 어떤  나쁜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나쁜 의도가 없었다고 해도 현실적으로는 그들로 인해 피해를 보는 이들이 생겨나고 있었기에 마냥 간과할 수만은 없다는 인식이 생겨난 것입니다. 실제로 위 판례가 알려지면서 일본 전역은 치매환자가 입힌 손해에 대해 배상 청구할 수 없다는 불안감에 휩싸였습니다.

주민들의 이런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지방자치단체들이 나서게 되었습니다. 치매 고령자로부터 지역주민의 재산권 피해를 보호하기 위해 민간 보험회사와 협의하며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는 방법 찾기에 나선 것입니다. 그리고 아이치현 철도 사고가 일어난 지 10년이 지난 2017년 11월 그 첫 결실을 맺게 됩니다. 바로일본 가나가와현에 있는 야마토시에서 최초로 ‘치매배상책임보험’을 도입한 것이죠. 이 보험은 지자체가 치매 고령자 보호 복지제도에 가입한 거주자들을 민간 손해보험회사에 가입시키고, 보험료 또한 피보험자 1인당 연간 약 6천 엔을 지자체 예산으로 부담함으로써 가족들의 부담까지 덜어주는 방식을 택한 것입니다. 뒤이어 2018년 6월에는 아이치현 오부시와 이바라기현 코야마 시, 7월에는 가나가와현 에비나 시, 10월에는 후쿠오카현 쿠루메 시 등이 동참하며 서서히 확산되고 있습니다. 

누구나 더 안전한 사회를 위하여

2019년 우리나라 노인 인구 비율은 약 14.8%로 고령사회를 넘어 초고령사회로 진입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현재까지 ‘치매보험’은 치매환자들의 병증을 중심으로 병원비나 간병비를 보전해주는 형태의 보험이 대부분입니다. 그러다 보니 치매 환자들이  일으키는 사고로 인해 늘어나는 제3자의 피해, 그리고 이로 인해 가족들에게 가중될 수 있는 재산적인 부담까지는 헤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고들이 잦아진다면(그리고 그로 인해 피해를 입는 이들이 많아진다면), 치매 환자들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더 가중되고 가족들에게는 또 다른 굴레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보험(保險). 지킬 보(保), 위험 험(險). 위험으로부터 지킨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변화해가는 사회의 모습에 따라 새로운 형태의 ‘공적 보험’을 도입하며 이 문제를 헤쳐나가고 있는 일본의 사례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누구나 그리고 모두에게, 조금이라도 더 안전한 사회는 그런 섬세한 배려 속에서 이루어질 수 있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