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사람들은 마이너스 채권을 살까?

크게 4가지 이유가 있다.

일, 십, 백, 천… 0이 주렁주렁한 대출 잔액을 보며 베짱이 대리는 망상에 빠진다. ‘딱 이 돈의 절반만 빚이면 좋겠다.’ 물론 안다. 놀부 심보가 따로 없다는 것을. 좋다고 쓸 때는 언제고 이제 와 절반만 갚겠다니. 세상에 이를 허락할 착한 채권자는 4대 성인 외엔 없을 거라 굴뚝같이 믿고 있었다. 그런데 최근 흥미로운 사실을 알게 됐다. 금리가 마이너스(-)인 채권도 있다고?

돈 내고, 돈 까먹기

마이너스 채권. 쉽게 말해 100만 원을 빌려도, 90만 원만 돌려주면 되는 채권이다. 표면금리가 음수(-)이기 때문. 마이너스 채권은 금리가 양수(+)인 보통 채권과 거꾸로 움직인다. 보통 채권은 금리가 높을수록 수익률이 올라간다. 반대로 마이너스 채권은 (원금) 손실률이 올라간다. 마이너스 채권의 90% 이상은 일본, 유럽 등 선진국에서 발행한 국채다.

마이너스 채권을 사는 건 ‘사서 돈을 잃는 것’과 마찬가지다. 희한한 점은 이렇게 상식에 반하는 채권을 찾는 투자자들이 적지 않다는 것. 블룸버그에 따르면, 2019년 9월 기준 전 세계 마이너스 채권 발행 총액은 약 12조 5,000억 달러로, 환산하면 1경 4,500조(!!!)에 달하는 천문학적 금액. 전체 발행 채권의 약 18%를 차지하는 엄청난 규모다. 대체 마이너스 채권을 사는 사람들의 속셈은 뭘까?

팔아서 플러스(+)로 만든다

새로 산 따끈따끈한 채권을 만기까지 들고 가는 경우는 드물다. 대부분 시장에 내놔 이윤을 노린다. 마이너스 채권 매수자들이 기대하는 첫 번째는 바로 ‘시세 차익’이다.

채권 가격과 금리는 반대로 움직인다. 마이너스 채권이라도 금리가 내려가면 매매 차익을 기대할 수 있다. 채권의 상대적 가치가 상승하기 때문. 예를 들어 시장가가 900원짜리인 볼펜을 1,000원에 샀다. 그런데 갑작스러운 원가 상승(금리 하락)으로 볼펜의 시장가가 1,200원으로 올랐다. 시장가보다 비싸게 펜을 샀는데도 결과적으로 200원 이익을 보게 된 것. 마이너스 채권도 같은 논리다.

시세 차익은 채권 수요 상승으로도 가능하다. 안전자산인 채권은 시장에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수요가 높아진다. 수요가 늘어나면 채권 가격이 상승해 비싸게 되팔 수 있다. 단, 가격 상승은 (채권과 금리의 반비례 관계에 따라) 수익률 하락으로 이어지므로 매도 시점을 잘 판단하는 게 중요하다.

바꿔서 플러스(+)로 만든다

2019년 11월 기준, 마이너스 채권은 일본과 일부 유럽 국가에서 발행 중이다. 즉, 외국 통화로 발행되는 외화 채권이다. 외화 채권은 환전을 거쳐야 한다. 마이너스 채권 투자자들이 노리는 두 번째는 바로 ‘환차익’이다.

환차익 여부는 스왑레이트(Swap rate)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스왑레이트는 자국 통화와 외국 통화의 교환 비율을 나타낸 것이다. 나온 값이 플러스냐, 마이너스냐에 따라 의미하는 바가 다르다.

먼저 플러스 스왑레이트는 선물(미래) 환율이 현물 환율보다 높을 때를 의미한다. 이는 빌려 간 사람이 원금에 돈을 더 얹어서 갚는 조건(미래 환율↑)인데도 통화 스왑(서로 일정량의 통화를 교환한 뒤 나중에 다시 돌려주는 것) 체결이 많다는 의미와 같다. 이렇게 되면 환율이 오르기 때문에 환차익을 기대할 수 있다.

반면, 마이너스 스왑레이트는 시장에서 자국 통화의 인기가 별로 없다(선물 환율↓)는 것과 같다. 원금보다 적은 돈을 갚는 조건인 데도 거래가 적다는 뜻이기 때문. 즉, 환차손이 예상되는 상황으로 손해를 입을 수 있다.

보관료가 싫어요

돈은 너무 많아도 곤란하다. 기업이 수백, 수천억의 자금을 사내에 보관하는 것은 장소뿐만 아니라 유지, 보안 측면에서도 비합리적이다. 여러모로 시중은행에 맡기는 게 훨씬 낫다. 문제는 은행이 정부 정책에 따라 마이너스 금리를 유지 중일 때다. 돈을 맡기면 이자를 받는 대신 ‘보관료’ 개념으로 이자를 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이런 상황은 기업이 은행만큼 안전하면서 은행 예치 금리보다 원금 손실이 적은 마이너스 채권에 투자하게 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또 채권은 거래를 통한 투자 수익도 기대가 가능한 장점이 있다.

기본 수요(Feat. 기관 투자자)

기관 투자자들에게 “모든 달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말은 그저 격언이 아니다. 반드시 따라야 하는 규칙이다. 포트폴리오 구성 시 주식, 채권, 펀드 등에 분산 투자가 강제되기 때문. 투자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기관 투자자들의 이런 기초적 수요는 마이너스 채권 투자를 부양하는 한 축이 된다.

마이너스 채권은 우리의 금융 상식을 뒤집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같은 존재다. 세계 경제가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세상에 진입했음을 알리는 신호탄과 같다. 마이너스 채권을 바라보는 시선은 엇갈린다. 확실한 것은 마이너스 채권이 더는 일부의, 한시적인 현상이 아니라는 점이다. 아마도 좀 더 시간이 흐르면 마이너스 채권이 세계 경제를 경기 침체와 유동성 함정의 수렁에서 구한 구원 투수였는지, 패전처리 투수였는지 확실히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