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중하게 집을 구해야 하는 이유 - PUNPUN

신중하게 집을 구해야 하는 이유

부산촌놈상경기 3화

(전편에 이어)

1년 넘게 백수 생활을 이어 가던 중, 전 회사의 팀장님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본인이 이직한 회사에 지원할 생각이 없느냐는 거였다. 서울 소재의 광고 홍보 회사로 업무는 전과 대동소이했다. 블랙기업에 호되게 당한 이후, 두 번 다시는 이쪽 업계에서 일하지 않겠노라고 굳게 다짐한 나였다. 하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인 현실 앞에 순순히 백기를 들 수밖에 없었다. 계속해서 집에 손 벌리기도 어려웠고, 주택청약까지 허물 정도로 주머니 사정이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오랜 고민 끝에 서류를 넣었다. 그리고 바로 다음 주에 면접을 본 후, 부산으로 돌아가는 길 위에서 합격 통보 전화를 받았다. (채용 절차가 빠를수록 일단 한번 기업을 의심해야 한다는 교훈을 이때 또 망각했다.) 그리고 출근 일까지 정확히 1주일 뒤로 정해졌다. 전날만 해도 백수였는데, 이제는 안동이 아닌 서울에 거처를 마련해야 했다. 그래도 길고 긴 취준 생활을 뒤로하고 그토록 염원하던 서울에서의 직장생활을 시작한다는 사실에 무척 기뻤다. 드디어 부산촌놈이 상경에 성공하는 순간이었다. (연재는 계속됩니다…)

사람들이 반지하 주택을
왜 피하나 했더니

남는 집이 많아 보증금과 월세가 저렴한 안동과 달리, 서울에서는 집 구하기가 여간 쉽지 않았다. 기본 수천만 원에 달하는 보증금을 마련하기도 어려웠고, 그렇다고 쥐꼬리만 한 급여의 3분의 1에 달하는 월세 역시 내가 당장 감당할 수준이 아니었다. 조건에 맞춰 집을 알아보고 계약하기에 1주일이란 시간은 너무나 짧았다. 이러다 머무를 곳 없이 출퇴근할 판이었다. 그때, 나보다 몇 개월 앞서 상경한 친구가 집구하기 전까지 본인 집에서 머물라고 선뜻 제안을 건넸다. 고시원까지 알아보고 있던 참에 참으로 천만다행이었다. 그렇게 월세와 관리비 절반을 부담하고 6개월 정도만 지내게 됐다. 반지하 원룸이긴 해도 회사까지 거리가 가까운 데다, 군식구를 받아줄 사람이 마땅히 없었기 때문에 딱히 불평불만할 처지가 아니었다.

그런데 홍대 앞 친구 집의 상태는 예상을 훌쩍 뛰어넘었다. 막상 방문해보니 말문이 턱 막힐 정도였다. 여태 경험해보지 못한 형태의 삶이었다. 반지하 주택에서 살아본 경험이 없어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왜 사람들이 기를 쓰고 피하는지 채 며칠이 지나지 않아 느낄 수 있었다. 일단 기본 옵션으로 제습기가 비치될 만큼 습기가 엄청났다. 뭐랄까, 사계절 내내 장마철이었다. 볕이 들지 않다 보니 빨래도 잘 마르지 않았고, 온종일 퀴퀴한 냄새가 집안을 떠다니다 구석구석 스몄다. 곳곳에 곰팡이가 끊이질 않았는데 하루라도 분리수거를 거르면 좁쌀 같은 벌레가 어김없이 기어 나왔다. 평소에도 그러니 비마저 쏟아지는 날은 물속에서 헤엄치는 것처럼 온몸이 끈적거렸다.

새 직장에서 적어도 6개월은 일하며 보증금을 어느 정도 모은 후에야 집을 구할 요량이었다.(대출도 받을 수 있고) 하지만 2~3개월 살다 보니 도무지 오래 머물 곳이 아니다 싶었다. 웬만한 환경에서도 잘 버티는 나였지만, 손바닥만한 집에서 습기를 둘둘 두르고 살다가는 나도 곧 썩어버릴 듯했다. 돈 좀 아끼려다 더 많은 것을 잃을 것만 같았다. (학교 앞이어서 월세가 저렴한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친구와의 합의를 무르고 3개월 만에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아무리 급해도 반지하나 옥탑방같이, 사람들이 뜯어말리는 곳에서 두 번 다시 살지 않겠노라고 굳게 마음먹으며.

꼼꼼하게 알아보지 않고
급하게 집을 구한 결과

3개월간 이모저모 고생을 했지만, 드디어 본격적인 서울살이를 시작한다는 기쁨에 무척 들떴다. 그런데 서울에서 집을 제대로 구해본 적 없다 보니, 어떤 집이 좋은지, 그리고 무엇을 따져야 하는지 도통 아는 게 없었다. 그렇다 보니 공들여 지역을 분석하지 않았고, 집 상태와 주변 환경을 열심히 재고 따지지도 않았다. (솔직히 반지하 방, 거기만 아니면 된다는 심정이었다…) 준비가 충분치 않으니 방을 둘러보던 첫날 얼떨결에 계약까지 끝마쳤다. ‘처음 본 집은 절대 계약해서는 안 된다.’, ‘적어도 3곳 이상의 지역을 둘러봐라.’ 등의 집 구하기 불문율을 알면서도 따르지 않았다. 혼자 산다는 들뜬 기분에 만취되어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친 셈이었다.

이사한 집은 멀쩡한 곳이 아니었다. 주거용이 아닌 건물을 쪼개 원룸으로 개조(용도 변경)한 것이라 집안에 싱크대, 가스레인지가 없었다. 심지어 집을 구경했을 땐 몰랐는데, 건물 뒤편에 고가도로가 맞닿아 있어 밤마다 차 다니는 소음에 시달렸다. (시꺼멓게 내리깔리는 온갖 먼지는 덤이고.)

결정적으로 이곳은 주거 용도가 아닌 ‘제2종 근린생활시설’로 분류되어 대출이 불가능했다. 연말정산을 할 때, 월세 명목으로 돌려받는 세액공제도 안 된다는 뜻이었다. 공인중개소에서 이 집부터 보여준 이유도 그제야 알았다. 제2종 근린생활시설 건물은 주거 용도 주택보다 중개수수료가 거의 곱절로 비쌌기 때문이었다. 이밖에도 하나하나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문제가 많았다. 주거 용도가 아니니 전기세가 일반 주택의 배로 나오는 것부터, 한 층당 7세대가 복도형 구조에 줄줄이 거주해 나도 모르게 사생활이 노출된다는 점까지… 독립의 설렘을 품고 계약한 집은 결국 오래가지 않아 하자로 가득한 거주지로 판명 났다.

일하는 시간을 제외한 대부분을 집에서 보내는데, 컨디션이 좋지 않다 보니 삶의 질이 급격하게 떨어졌다. 어쨌든 밥은 먹어야 해서 조그만 인덕션을 썼고, 그마저도 설거지는 화장실에서 해결해야 했다. (쪼그리고 앉아 그릇을 씻을 때마다 널찍한 주방이 있는 곳으로 이사하는 꿈을 꿨다…) 그뿐만 아니라 공과금, 관리비 등이 비싸다 보니 고정비로 나가는 돈도 만만치 않았다.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지역별로 집을 알아보며 조건과 환경을 꼼꼼히 따져만 봤어도, 건물의 용도가 무엇인지 등본만 제대로 살펴봤어도 피할 수 있던 일이었다. 펜 하나를 사더라도 품질, 가격, 배송비 등을 꼼꼼하게 따져봤던 내가, 그보다 더 큰 금액이 오가고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집을 구할 때 너무나 많은 것을 간과하고 넘어갔던 것이다. 시간이 없으니 반지하 방이라도 일단 살고 보자는 안일한 생각과 반지하만 벗어날 수 있다면 어디든 괜찮다는 게으른 마음가짐의 대가는 생각보다 훨씬 컸다.

부산촌놈이 깨달은 것
1. 반지하, 옥탑방 등을 사람들이 왜 피하는지 생각해보자. 월세를 아끼려다 더 많은 것을 잃을 수 있다.
2. 집은 충분한 시간을 두고 최대한 많이 알아보자. 처음 본 집을 곧바로 계약하는 것은 금물. 적어도 3곳 이상의 지역에서, 여러 곳의 공인중개소를 들러 비교해보는 게 좋다.
3. 계약하려는 집의 등기부등본을 꼭 확인하자. 건물의 용도가 무엇이냐에 따라 중개수수료, 전세자금 대출가능 여부, 세액공제, 관리비 등에서 차이가 난다.

(다음 편에 계속)

20대의 끝과 30대의 처음을 타향, 서울에서 보내고 있다. 처음엔 독립이 마냥 기뻤는데, 집을 떠나 낯선 곳에 자리 잡는 과정이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다. 그래도 홀로 사는 삶이 익숙해지자 차츰 주변에 눈이 돌아갔다. 그때부터 적금, 청약 같은 기본적인 재테크부터 시작해 주식, 해외 ETF 투자까지 온갖 걸 경험했다. 정부 지원이나 정책도 꼬박꼬박 챙겨가며 아등바등 살았고. 피나는 노력의 결과 이제 어느 정도 숨통은 틔우고 산다. 하지만 돌이켜 보니 누가 미리 좀 알려줬더라면 좋았을 일이 수없이 많다. 그래서 이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며 쓴, 그때는 몰랐고 지금은 아는 이야기이다. 에디터 쿨럭(부산 촌놈)의 짠내나는 상경기는 격주 목요일 연재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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