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여자 독립기 ⑫ : 갭투자의 성지, 염창동에 입성하다 - PUNPUN

서울 여자 독립기 ⑫ : 갭투자의 성지, 염창동에 입성하다

하지만 대출 과정이 그리 간단치 않았으니…

오늘 일기 3줄 요약
👆 집주인이 20년 동안 단 한 번도 살지 않았던 아파트에 입주했다. ✌ 갭투자의 성지에 들어서기 위해 넘어야 할 마지막 관문은 대출이었다. 👌 전세자금대출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 복잡함을 넘어야 비로소 내 집이 된다.

우여곡절 끝에 집을 샀다. 가계약금을 보내고 나서도 수억 원대의 쇼핑을 했다는 사실을 실감하지 못하다가, 계약서 작성에 앞서 중도금과 잔금 일정을 정리했다. 그런데 어차피 잔금은 유동적이니 중도금만 적당한 선에서 정하자고 했다. 아차 싶었다. 중도금이라니. 자금 계획에 없던 항목이었다.

계약금을 받은 이후라도, 만약 매도인이 의지를 갖고 계약을 파기하고자 하면, 금액의 2배를 주면 그만이다. 하지만 중도금이 들어가면 계약을 무를 수 없다. 이런 중도금의 위력을 꽤 늦게 알게 되었다. 아무튼 계약금까지는 어떻게 해결했는데, 중도금까지 필요하다니. 전혀 예상치 못한 포인트였다. 계약서에 도장을 찍는 것은 많은 걸 의미했다. 계약서를 작성하면서 중도금 액수와 시기까지 조율해야 했다. 중개사와의 몇 번의 전화 덕분에 빠르게 현실을 직시할 수 있었다.

계약금 다음은 중도금
중도금 다음은 잔금, 이게 바로 산 넘어 산

중도금을 위해 퇴직연금 수령 시기를 당겨야 했다. 우리는 계약금 외의 금액은 ‘대출과 전세보증금 그리고 퇴직연금’으로 해결하기로 한 상태였다. 물론, 잔금 외에도 취득세와 양쪽 집의 중개비, 이사비용, 법무사 비용 등까지 모두 포함한 금액이 필요했다. 이때, 1억 후반의 전셋집 중개사 비용과는 차원이 다른 금액이 들어간다. 이래저래 계산하면 대략 800만 원 언저리. 거기에 신혼살림을 구매하며 포기했던 전자제품까지 더하니 추가 비용이 1,600만 원에 달했다.

퇴직연금이란 은퇴 후 소득이 없을 때를 대비해 그전까지는 쓰지 못하는 구조이나, 몇몇 특수한 경우에는 가능하다. 근로자 본인, 배우자, 부양가족에게 질병 및 부상이 발생해 장기요양이 필요한 경우, 임금피크제 등으로 월 소득이 감소하는 경우, 집을 사거나 전세자금 및 임차보증금을 마련하는 경우, 개인 채무로 인해 파산선고 이후 개인회생 절차를 밟는 경우 등이다.

신청을 위해 회사 명판이 찍힌 퇴직연금 중도인출 신청서, 주민등록등본, 현 주소지와 앞으로 거주할 집의 건물 등기부 등본, 지방세의 세목별 과세 증명서, 부동산 매매계약서 사본, 계약서 영수증 등 여러 가지 서류를 받기 위해 이곳저곳 바삐 움직여야 했다. 등본 정도야 어렵지 않았지만, 꼭 당일에 뽑은 것을 가져오라는 은행의 신신당부도 있었다. 집을 산다는 사실을 회사에 알려야만 했고, 지방세 세목별 과세증명서는 무조건 주민센터에 직접 방문해야 발급할 수 있었다. 퇴직연금을 신청한다고 바로 나오는 것도 아니었다. 1~2주 걸리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나마 은행원의 융통성 덕분에 우리는 상대적으로 빨리 나온 편이었다.

하지만 언제 나올지 모르는 퇴직연금이 불안해, 혹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어른들께 빌릴 요량으로 최대한 중도금을 뒤로 미뤄 놓았고 금액도 최소화했다.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여지를 최대한 만들고 싶었다. 계약서를 쓰는 날은 그저 아름답게 인사하며 도장이나 찍는 날이었다. 사전에 모든 조율이 완료된 상태여야 했다. 과정마다 중개사의 역할은 생각보다 폭넓었다.

도장을 찍는 대망의 날, 중개사 부장님은 등기부등본을 뽑아서 보여주었다. 집의 역사는 생각보다 단순했다. 인천에 살던 A라는 사람이 1997년에 낙찰을 받아 소유자가 되었다가, 거주하던 단지의 다른 동으로 2001년에 이사했다. 그러다 2002년, 부부로 추정되는 B 커플이 매수했는데 이들은 2013년에 다시 성동구로 이사했고, 이후 현 매도인이 2014년 11월에 2억 1천만 원의 대출을 끼고 3억 원에 이 집을 매수했다. 엄마가 말한 리모델링 시점과 딱 맞아떨어졌다. 그리고 리모델링을 마치고 전세를 내주며 전세자금으로 대출 자금을 (아마도) 회수했을 것이다. 2018년 3월, 4억 7천만 원에 매도했으니 리모델링 비용과 전세 기간의 이자, 그리고 그간의 재산세를 고려하더라도 1억 3천만 원 이상 차익을 봤다고 계산이 떨어졌다. 불과 4년 만에 말이다.

우리와 계약한 매도인 역시 다른 곳에 살고 있었다. 그러니까 실 소유자가 이 집에 거주한 건 19997년 이후 우리가 처음이었다. 염창동이 갭투자의 성지라고 했던 이유가 다 있었다. 한때, 천만 원으로 전세를 끼고 집을 살 수 있었던 동네다. 이 신묘한 기술을 진즉 알았더라면 나도 건물주가 될 수 있었겠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글을 쓰는 지금에서야 그걸 깨달은 우매한 인간이었다.

대출이라는 (너무나 높고 험한)
마지막 허들을 넘어야 한다

20년 동안 한 번도 건물주의 손을 탄 적이 없는, 세입자만을 위해 존재한 이 아파트는 인제야 주인과 함께하는 건물이 되었다. 물론 중도금이 해결되었다고 모든 게 끝난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대출이 남아있었다. 실은 가장 큰 과제였다. 우리가 필요한 돈 그 이상의 대출은 허용되지 않았다. 엄밀하게는 그 아래만 가능했다. 그때까지도 대출이 말하는 집의 ‘시세’가 무엇인지 몰랐다.

몇 번의 시뮬레이션으로 받을 수 있는 최대치의 금액을 산정하고, 그에 맞춰 자금계획을 세웠다. 다행히 계약금과 중도금까지 무사히 넘겨, 대출과 전셋집 빼기만 완료하면 되는 상태였다. 하지만 제도가 허용하는 최대치의 대출을 받아야 했다.

필요한 대출은 총 2가지였다. 내집마련디딤돌대출과 보금자리론. 전자는 2018년 3월 당시, 5억 원 이하의 주택을 구매할 때(수도권 기준) 최대 2억 원까지 대출이 가능했고, 후자는 6억 원 이하 주택 구매 시(수도권 기준) 최대 3억 원까지 대출이 가능했다. 이 2가지를 모두 활용하면 최대 5억 원까지 대출이 되는 기적이 이뤄지지만, 한국주택금융공사는 바보가 아니다. 내집마련디딤돌대출로 2억 원을 받으면, 보금자리론으로 추가 대출을 받아도 주택 시세의 70%까지만 대출이 가능했다. 여기에 부부합산 소득이 기준 금액 이하여야 한다는 조건이 붙었다. 나는 월급 생활자였고 남편은 자영업자라 홈택스 상의 부부합산소득은 기준금액에 아슬아슬하게 부합했다.

금리할인 조건도 몇 가지 있었다. 아이, 특히 3명 이상의 다자녀 가장은 금리할인 외에도 대출 가능한 소득수준 변경 등의 추가 혜택이 주어진다. 당시, 자녀가 없어 금리할인은 불가능했지만, 생애 첫 주택 구매와 신혼부부라는 조건으로 우대금리가 적용됐다. 또한 3년, 그리고 36회 이상 불입한 청약통장을 보유했을 때에도 우대금리가 적용되었는데, 불입 횟수는 기존의 청약통장과 인정 요건이 같아, 당연히 우리도 해당하였다. 물론 우대 사항만 있지는 않았다. 예를 들어, 투기지역이나 투기과열지역에서 매수할 경우, 오히려 0.1%의 금리 추가가 발생했다.

이런, 내가 알던 시세가
그 시세가 아니었네요

4억 7천만 원. 거래금액이 곧 시세라고 생각했다. 뭐 일단 거래를 했으니까. 하지만 주택금융공사가 말하는 기준은 ‘KB시세’였다. 소득증명과 관련된 각종 서류, 금리 우대를 위해 신혼부부임을 증명하는 수많은 자료를 제출하고 나서야 뒤늦게 알았다. 거래금액이 시세가 아니라 그저 주택가격일 뿐이라는 것을. 그러니까 KB국민은행에서 리서치하는 시세는 거래금액과 반드시 일치하지 않았다. 심지어 우리가 거래한 곳은 해당 단지 중 최저점으로 평가되었다. 왜냐? 1층이었으니까.

다른 집의 시세가 5억 원에 잡혀 있을지언정, 우리가 계약한 집의 시세는 좀 더 저렴한 4억 5천 500만 원 수준이었다. 그러니까 시세의 70%가 최대 대출 한도인 경우, 우리가 대출받을 수 있는 금액의 최고치는 3억 1,850만 원이었고, 그 와중에 10만 원 단위로 대출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라 3억 1,800만 원까지 대출 가능하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래도 괜찮겠냐는 상담원의 질문에 안 괜찮으면 어떻게 되냐고 되물었다. 그러면 대출 신청 자체가 취소된다. 수긍했다. 우리는 갑이 아니었다. ‘없는 돈으로 집 사는 게 이렇게 어렵냐’며 짜증과 분노 섞인 말을 수도 없이 외쳤지만 그게 그들의 잘못은 아니었다. 그저 제대로 알아보지 않은 내 잘못이었다. 예상했던 대출 가능 금액은 3억 2,900만 원이었고, 거기서 약 1천만 원이 넘게 모자랐다. 하. 퇴직연금이 아니었으면 메우지 못할 액수였다. 뭔 우여곡절이 이다지도 많단 말인가. 푸념하는 내게 친구가 위로를 건넸다.

“그 정도 푸닥거리면 준수한 거야. 원래 집 살 땐 크게 고생하는데 돈 50만 원 더 쓰고, 대출도 1,000만 원 모자란 정도면 아주 나이스하네. 너보다 더한 사람 쌔고 쌨어.”

이후, 서류를 넣고 10분이 넘는 긴 통화로 내용을 확인한 다음 어렵사리 대출 승인을 받았다. 은행에 가서는 수없이 많은 서류에 사인했다. 공동명의로 구매한 만큼 2명의 사인이 필요했다. 대출자 명의는 나지만 족히 10페이지는 넘는 문서에 사인하고 신랑에게 넘겼다. 말하자면 연대보증인 셈이었다.

그렇게 우린, 부채 3억 1,800만 원이 남은 빚쟁이가 되었다.

‘돈’과는 거리가 먼 예술계에서 머물다 뒤늦게 ‘재테크’에 눈을 떴다. 푼푼에서 ‘서른에 시작한 주식 오답노트’를 연재하며 수많은 재린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해외 주식 매수법’을 공개 했던 그가 재린이를 위한 부동산 이야기를 들고 돌아왔다. 내 집 마련하고 싶은 이들의 궁금증을 해소해 줄 ‘서울 여자 독립기’는 매주 수요일 푼푼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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