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여자 독립기 ⑪ : 전셋집 빼기가 이렇게 힘들 줄이야 - PUNPUN

서울 여자 독립기 ⑪ : 전셋집 빼기가 이렇게 힘들 줄이야

전셋집을 구하는 게 그냥 커피라면 나가는 건 TOP였다

오늘 일기 3줄 요약
👆 계약한 아파트에 들어가려면 (계약 기간이 끝나지 않은) 기존의 전셋집에서 보증금을 빼야 한다. ✌ 100곳이 넘는 곳에 집을 내놨고 40쌍이 넘는 커플이 집을 보러 왔지만 계약은 쉽지 않았다. 👌 결국 웃돈 아닌 웃돈을 얹어주고 나서야 계약할 수 있었다.

그땐 미처 알지 못했지
발등에 불 떨어진 건 우리라는 것을

전셋집에 들어갈 때, 우린 도배, 장판을 새로 하지 않았고, 새로운 집으로 이사한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실은 이사를 준비할 당시, 그런 건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왜냐하면 전셋집이 도무지 나가지 않아, 3달 동안 마음을 심하게 졸였기 때문이다.

우린 기존의 전셋집 주인과, 첫 2년 그리고 향후 2년의 권리를 추가로 보장받는 전세 계약을 했다. (대한민국의 전세 세입자는 같은 권리를 보장받는다. 지금은 제도가 바뀌어 조금 더 길게 연장할 수 있다). 그 말인즉슨 건물주도 최소 2년간 계약을 유지할 권리가 있다는 뜻이었다.

투룸 빌라에 사는 1년 동안 옆집 세입자가 2번 바뀌었다. 그중 2번째 세입자는 들어온 지 6개월도 안 되어 나갔다. 사업하는 장소가 바뀌어 이사를 한다나? 그걸 보며 생각했다. 여긴 예상보다 전세금 빼기 쉬운 집이구나, 필요하다면 중간에 이사 가는 것도 큰 문제는 아니구나. 계약은 곧 예의(?)이기 때문에 그래도 2년은 채워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사실 그때 바뀌었던 셈이다. ‘나보다 여유로운 건물주를 걱정 이유가 없는데’까지 생각이 미치자 비로소 집을 살 용기를 낸 것이다.

계약상 2018년 2월이 계약 만료 기간이었지만, 2017년 3월 즈음 건물주에게 7월경에는 이사를 해야 한다고 전했다. 깜짝 놀랄 거라는 순진한 예상과 달리, ‘그래요’라는 매우 담담한 대답을 들었다. 그때는 몰랐다. 전셋집을 빼는 건 그가 아닌 내 발등의 불이라는 사실을.

결혼 1주년을 맞아 기념 여행까지 다녀온 후, 5월 첫 주에 집을 내놨다. 각종 부동산 애플리케이션에 사진을 올리고, 부동산에도 집을 내놨다. 마침 이사 들어오는 날 찍어둔 빈집 사진도 있었고, 상대적으로 깔끔하게 정리된 사진을 올리기 위해 며칠에 걸쳐 대청소까지 단행했다. 또 언제 집을 구경하러 올지 모르니 언제나 깔끔하게 유지했다. 하얀색 실크 벽지에 나무색을 띠는 바닥과 연한 원목 톤으로 맞춘 가구가 어우러져 겉보기에 나름 괜찮았다. 흔한 TV나 액자 하나 없는 조촐한 살림에 냉장고까지 베란다에 나가 있어 실제 사이즈보다 내부도 넓어 보였고.

5월엔 유난히 휴일이 많아 누가 봐도 결혼을 앞둔 커플이 집을 보러 수시로 드나들었다. 주말에는 최소 3팀 이상이 방문할 정도였으니. 그렇다 보니 상시 대기 상태로 1달 반이 지났다. 빨간 날이나 평일 저녁에도 항상 방문이 가능하도록 신랑이 상주했다. 그러다 한 3주쯤 지나도 영 입질이 오지 않아 불안해진 나는 A4 용지에 위치, 조건, 장점, 사진 등을 담아 총 40장을 출력해 신랑의 손에 쥐여주었다. 집주인의 번호도 넣어야 해서 전화로 상황설명을 했다.

“그러게. 왜 전세가 해결이 안 됐는데 집 계약을 했어. 순서가 바뀌니 힘들지!”

그랬다. 집주인은 다급할 게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그저 계약 파기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우리는 다음 세입자의 보증금이 있어야 짐을 뺄 수 있었지만 그는 보증금을 미리 내줄 의무가 없었다. 법으로 보장된 권리가 2년이었으니까. 부동산 거래 경험이 수없이 많을 건물주에게 상황은 너무나 익숙했다. 생각해 보니 우리가 입주할 때도 기존의 세입자는 계약 기간을 다 채우지 못했다. 그들도 집을 사서 나간다고 했다. 갈수록 마음이 급한 건 명백히 우리였다. 우린 보증금이 있어야 잔금을 치른다. 발등에 불이 떨어져도 정말 크게 떨어졌다

“이걸 들고나가서 인근 1km 이내에 있는 부동산이란 부동산에는 다 쥐여 주고 와”

1시간 남짓 막중한 임무를 수행하고 돌아온 신랑은 놀라면서 말했다.

“부동산이 정말 많아. 이렇게까지 많은지 몰랐다. 40장 다 돌리고도 부동산이 아직 한참 더 있어.”

중개사무소에서 요즘도 이렇게 집 내놓는 사람이 있냐며 놀라더란다. 다시 1~2주가 속절없이 지났지만 집은 여전히 나가지 않았다. 불안한 마음에, 신랑은 9호선 라인을 중심으로 한 정거장 거리까지 60장을 곳곳에 뿌렸다. 제때 해결된다면, 수수료도 더 챙겨준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주말 일정은 완전히 정지 상태였다. 잠시 나가려다가도 부동산에서 연락이 오면 약속을 취소하고 다시 들어왔다. 전셋집을 구할 때 들인 품이 10이라면 나갈 때는 50이 넘었다. 이 집의 조건 자체는 좋았다. 그래서 들어온 거니까. 하지만 같은 건물 4층에도 집이 나오다 보니, 사람들이 한 건물 2개의 매물을 두고 저울질한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3월부터 나와 있던 4층의 빈집 역시 아직 새로운 세입자를 구하지 못했다. 부동산에서도 우리 집과 그곳을 같이 보여줬다. 심지어 거기는 가격도 500만 원 저렴했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매물이 한 건물에 있다는 것은 매우 치명적이었다. 그러다 6월 초가 되어 4층 집이 나갔고 그제야 가능성이 조금이나마 올라가는 듯했다.

하지만 계절은 계속해서 여름에 가까워졌다. 계절상 여름은 이사 비수기다. 누가 한겨울과 한여름에 눈비를 맞으며 이사하고 싶을까? 신혼부부도 1~3월에 집을 알아보다 늦어도 4월에 계약하고 5월에 결혼해 입주한다. 9~10월 입주를 원하는 커플은 많았지만, 결국 7월이란 조건이 문제였다.

사람이 아닌 돈을 믿으라는
또 하나의 교훈을 얻다

그 와중에 기억조차 하고 싶지 않은 경험도 했다. 집을 내놓은 초반, 여자 혼자 집을 보고 갔다. 마음에 든다며 가계약금을 보내겠다고 했다. 처음 보는 부동산이었지만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물론 걸리는 게 없었던 것은 아니다. 결혼 날짜가 언제냐고 묻는데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고 했다. 느낌이 이상했지만 집부터 구하는 경우가 종종 있겠지라고 여겼다. 그런데 지방에서 일하는 남자가 한 번 더 집을 보고 주말에 계약서를 쓰기로 하는 과정에서 상황이 이상하게 흘러갔다.

통상적으로 계약금은 보증금의 10%이다. 법으로 정한 조건은 아니나 보통 그 정도 수준에서 오가는데 갑자기 계약금을 5%만 걸겠다는 것이다. 안다. 전세자금대출을 신청할 때 대차 계약서와 계약금 5% 이상의 지급 영수증만 있어도 무방하다는 것을. 그러나 그건 그저 가이드라인일 뿐, 5%만 거는 경우는 거의 없다. 건물 가격이 엄청나게 비싼 게 아니라면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로 하겠다는 제안이 왔다며 건물주가 전화했다.

“새댁. 나는 사람은 안 믿어. 돈만 믿어. 정말 이 계약할 거야?”

1억 7천만 원이 넘는 돈에서 5%면 그것도 이미 몇백만 원이지만 여기에 들어올 사람이면 그것도 큰돈이 아닐까 싶었다. 그래서 영 찜찜했지만 그래도 괜찮다고 하고 5%의 계약금을 건 계약서를 썼다. 하지만 집을 보러 오기로 한 당일, 끝내 계약은 취소됐다.

건물주가 옳았다. 사람은 믿는 게 아니라 돈을 믿어야 했다. 가계약금은 건물주의 용돈이 되었고, 계약은 정리되는 듯했다. 어이없는 상황에 혼이 털리고 불안한 마음이 계속되는 와중에 그가 건물주에게 가계약금을 돌려달라며 소송이라도 걸겠다고 계속 연락한다는 것을 뒤늦게 듣고 통탄했다. 그들은 부동산 중개인을 닦달하다 못해 건물주 연락처를 직접 받아 연락하고 있었다.

우린 그 건물에서 거의 유일하게 건물주와 관계가 좋은 세입자였다. 신랑에게 1층이 아니라 옥상에서 담배를 피워도 된다며 문을 열어주었고, 거기서 수다를 떨며 그나마 좀 편한 관계가 되었다. 작은 텃밭에서 키운 아기 머리만 한 배추도 받아오곤 했다. 우린 건물주를 좋아했고, 그의 까다로움이 건물이 유지되는 비결임을 알았다. 그런데 이런 귀찮은 일이 아직 건물주에게 안 좋은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에 화가 났다. 이후에 우리가 번갈아 불같이 화를 내고 나서야 문제가 해결됐다.

속앓이와 웃돈과 맞바꾼 계약

참 힘든 과정이었지만 시간이 지나 결국 계약에 성공했다. 어떻게? 무려 50만 원의 웃돈을 주고.

집을 보러 온 사람들은 여름에 가까워질수록 가을 입주를 원했다. 우리는 기다릴 여유가 없어 마음이 타들어 갔다. 그 무렵, 한 사람이 동생이 혼자 살 집을 보러 왔다. 대로변에 있으면서도 완전히 찻길은 아니고, 지하철과 가까워 안전해 보인다고 했다. 바로 앞에 학교가 있지만 학생들과 마주치는 일이 출퇴근 시간에는 전혀 없어 마음에 든다고 동생과 다시 온다는 말을 남겼다. 그렇게 마음에 들어 하는 기색을 보고서, 부동산 중개인은 신규 세입자가 새로이 받을 대출을 2개월 당겨 받고, 그만큼의 이자를 우리가 제공하는 방향으로 계약을 제안했다. 물론 수수료는 좀 더 챙겨준다고 하셨지요?라는 말과 함께. 결국 2개월 치 이자를 수수료 명목으로 얹어주고 계약을 마무리했다. 실입주는 9월이었지만, 우리가 필요한 금액만 대출금으로 먼저 빼주고, 차액은 입주 시에 주는 것으로. 2달 가까이 40번에 달하는 집 보여주기와 이자 50만 원에 수수료까지 얹고 나서야 마침내 집에서 빠져나왔다.

이사 예정일 2일 후, 신랑의 해외 출장이 잡혀있었다. 커다란 집에 덩그러니 혼자 남을 내가 걱정된다며 이사 날짜를 출장 이후로 미루면 어떻겠냐는 권유에 ‘이 집에 오만 정이 다 떨어졌으니 하루라도 빨리 이사할 거야’라고 선언했다. 그렇게 폭염주의보가 뜨겁게 내리깔린 7월의 어느 날, 편의점 얼음팩을 몇 개씩 사 들고서 ‘새집’ 안으로 꾸역꾸역 짐을 들이밀었다.

‘돈’과는 거리가 먼 예술계에서 머물다 뒤늦게 ‘재테크’에 눈을 떴다. 푼푼에서 ‘서른에 시작한 주식 오답노트’를 연재하며 수많은 재린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해외 주식 매수법’을 공개 했던 그가 재린이를 위한 부동산 이야기를 들고 돌아왔다. 내 집 마련하고 싶은 이들의 궁금증을 해소해 줄 ‘서울 여자 독립기’는 매주 수요일 푼푼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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