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여자 독립기 ⑨ : 이달 안에 계약하고, 상반기 안에 이사 갈 거야 - PUNPUN

서울 여자 독립기 ⑨ : 이달 안에 계약하고, 상반기 안에 이사 갈 거야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열심히 발품을 팔다

오늘 일기 3줄 요약
👆부동산 중개사 부장님 덕분에 2개의 정부보증 대출상품을 받으면 70%까지 대출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 그런데 한 달 사이 또 아파트 가격이 올랐다. 👌 이제 발품과 실행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두 가지 대출에서 일말의 희망을 발견하다

서울에서 쓸만하다는 아파트들의 가격이 급등하기 시작했다. 정부에서 지정한 투기지역은 ‘투자’에 적합한 지역임을 인증하는 ‘KS마크’와도 같았다. ‘그래도 염창동에는 그런 여파가 없겠지’라고 생각했지만 착각이었다. 하루가 다르게 시세가 변해 심란한 심정을 감출 길이 없었다. 네이버 시세는 믿을 수가 없다는 말에 전셋집을 구해준 부동산에 전화로 시세를 물었다.

드라마틱하지는 않을지언정, 시세는 나에게 아주 유의미하게 변화하고 있었다. 네이버 시세는 한국감정원이나 KB리브온보다 훨씬 더 충동적으로 움직였다. 2017년 겨울에 물어본 아파트가 2018년 3월에는 2천만 원이 또 올랐다. 시세일 뿐이라 쳐도, 가격 오름세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어떤 건물주가 가격을 안 올리고 싶겠는가. 사람 마음은 다 같은 것이니 말이다.

맥락 없는 통화를 끝낼 무렵, 부장님이 희망을 던져주었다.

“그런데요, 방법이 하나 있어요.
제가 지난주에 은행에 문의해서 그 방법으로 이번 주에 매매계약 했어요”

그건 바로 대출을 두 가지 받는 것이었다.

(지금은 규제가 바뀌었지만) 그 당시에는, 거래 시세 5억 원 이하의 집은 주택금융공사에서 운용하는 내집마련디딤돌대출과 보금자리론 등 두 가지로 최대 70%까지 대출이 가능했다. 물론 소득 상한선 기준은 존재했다. 부부합산소득 6천만 원 미만이 전제조건이었다. 그건 맞추는 게 가능할 것 같았다. 난 월급을 받는 직장인이었지만, 신랑은 사업자라 공제요건들이 많았고 따라서 종합소득세 상 소득은 상대적으로 적게 잡히는 편이었다.

그러니까. 5억 원 이하의 아파트를 구하는 게 관건이었다. 당장 부동산 애플리케이션을 켜고 대출 가능한 아파트 단지를 물색했다. 물론 나의 패착은 입지의 중요성을 그렇게 절절히 공부하고도 정작 집을 살 때는 출퇴근 가능 지역을 벗어나지 않았던 것이었지만.

어쨌든 희망이 생겼고 나는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반경은 정해졌다. 염창동. 자그마한 면적의 수많은 아파트 중 우리 집이 어딘가 한 곳은 있다고 생각했다. 그때부터 두 가지 대출상품을 다 받을 수 있는 가격대의 아파트가 나올 때마다 연락을 받기로 했다. 하지만 나는 안일했다. 그런 놀라운 소식을 듣고도 그저 네이버 부동산 페이지나 들락거렸다. 다시 시세가 2~4천만 원이 오르는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던 꼴이었다. 그러다 마음속에서 최우선으로 꼽던 아파트의 시세가 한 달 사이에 2천만 원이나 올랐다는 사실을 듣고 나서야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을 알았다. 나는 신랑에게 이 뜨거움을 그대로 전했다.

“나는 이달 안에 계약을 할 거고, 상반기 안에 이사 갈 거야. 그런 줄 알아”

열심히 발품을 팔았지만,
현실의 벽은 만만치 않았다

집을 사겠다고 이미 이야기했지만, 그래도 전세를 한 번 정도 더 돌리고 난 다음에 이사 갈 거라 말한 터였다. 그 말을 내뱉은 지 6개월 만에, 그리고 당시 살던 전셋집에 들어간 지 1년 만에 내린 결정이었다. 내가 한번 한다면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모를 리 없는 신랑은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고, 곧바로 집을 나서 가양역 인근부터 훑기 시작했다. 최소한 함께 삶을 살아나갈 사람이 동의하는 집을 사는 게 중요했으니까.

늘 그렇듯 부동산은 발품이다. 그렇게 9호선 라인을 필두로 아파트단지를 하나하나 둘러보았다. 그때도 마곡은 핫해질 대로 핫해진 상태였고, 우리의 예산으로 마곡에 들어가는 것은 불가능했다. 일단 9호선 라인인 가양역에서 도보로 이동 가능한 거리 중 가장 멀리 떨어진 아파트부터 단지 근처를 직접 둘러보기 시작했다.

소위 말하는 임장의 시작이었다. 물론 지금도 임장을 하면서 뭘 어떻게 체크하고 확인해야 하는지 모른다. 지금도 모르는 걸 그때라고 알리 없었다. 그저 우리의 방식으로 공간을 둘러봤다. 우리의 조건은 3가지였다. (그때는 몰랐지만) 조만간 태어날 아이를 위해 방이 3개, 화장실이 2개인 30평대 아파트일 것, 9호선에서 도보 이동이 가능할 것, 인근에 유흥시설이 없을 것. 그 기본조건을 충족시킬 아파트 자체는 사실 가양과 염창에 많았다. 염창동은 중학교까지 학군도 괜찮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하철과 거리가 멀지 않았고, 염창역까지 도보 이동이 가능하다면 강남까지 지하철로 22분이면 도달할 수 있는 엄청난 장점을 가진 동네였다. 다만 예산과 맞는지가 중요할 뿐.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 일대 한강 변에는, 원하는 조건을 충족하면서 예산과 맞는 곳이 현재 사는 아파트 말곤 없을 거라고. 이미 많은 아파트가 5억을 훌쩍 넘어가고 있었다. 최악의 경우 다운계약서라도 써서 현금 지불을 하고 들어가야 했다.

하여튼. 가양역에서 가장 먼저 만난 아파트는 강서 한강자이였다. 살짝 걸어야 해도 인근에 9호선이 있고, 마곡과 가까운 새 아파트였다. 하지만 예상대로 시세는 범접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그때 7억을 넘던 아파트 대부분이 현재 10억을 호가한다. 그러니 5억 원대 집이 있을 리 없었다. 그렇게 가양역부터 평수와 금액, 두 가지 필터를 켜고 다시 아파트들을 찾아다녔다. 물론 괜찮아 보이는 아파트 대부분이 예산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그렇게 몇 시간을 골목골목 걸어 다녔다. 2017년 겨울 시세를 보며, 한 걸음만 빨랐다면 저렴하게 집을 구할 수 있었을 것을, 선택의 폭을 훨씬 넓게, 그리고 좋은 입지의 집을 구할 수 있었을 텐데. 이럴 줄 알았으면 어떻게든 결혼할 때 집을 살걸. 정말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하지만 우리는 최대한 자력으로 살아가고 싶었다. 그렇기에 만약 그때 집을 샀다면, 아마도 어른들께 큰돈을 빌려야 했을 것이다. 부담스러운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갭투자를 알던 시절도 아니었다.

A아파트는 지하철에서 너무 떨어져 있고, B아파트는 브랜드 인지도가 너무 낮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둘 다 예산을 넘어서기 일쑤였다. 걷는 내내 부동산이 보일 때마다 문을 두드리고 구하고자 하는 조건을 이야 했지만, 이미 그 동네도 5억 원으로 집을 구하는 게 쉽지 않아 보였다. 언젠가 월세를 구할 때와 비슷한 상황이었다. 생각했던 예산보다 전체적인 예산이 높아 어느 정도 포기해야 하는 상태였다.

그렇게 하루 내내 동네를 헤집고 다니며, ‘그 조건은 없어요’라는 거절의 말을 수없이 들었다. 미묘한 무시와 모멸감을 견디며 마침내 염창동의 끝에 도착했다. 가장 끝에 있는 동아 3차아파트는 염창역과 가장 가까우면서 한강 영구조망권이 확보된 단지였다. 하지만 그 역시 우리가 손댈 수 없는 가격이었다.

‘돈’과는 거리가 먼 예술계에서 머물다 뒤늦게 ‘재테크’에 눈을 떴다. 푼푼에서 ‘서른에 시작한 주식 오답노트’를 연재하며 수많은 재린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해외 주식 매수법’을 공개 했던 그가 재린이를 위한 부동산 이야기를 들고 돌아왔다. 내 집 마련하고 싶은 이들의 궁금증을 해소해 줄 ‘서울 여자 독립기’는 매주 수요일 푼푼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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