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기업에 호되게 당하다 - PUNPUN

블랙기업에 호되게 당하다

부산촌놈상경기 2화

(전편에 이어)

1주일 만에 서류 지원에서 첫 출근까지

전화를 끊고 내용을 곱씹어보니 미심쩍은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하지만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었기에 일단 알겠다고 답했다. 생애 첫 면접을 이대로 놓칠 순 없었으니까.

면접 당일, 옷장 깊숙한 곳에 처박힌(실은 아직 한 번도 입어보지 못한) 정장을 꺼내 입고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그런데 예정 시간보다 늦게 도착한 두 사람(대표님과 팀장님)은 사무실이 아니라 방문객을 위한 로비 테이블로 안내하더니 절차나 형식 없이 곧바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주로 이력서 위주의 질문에 더한 주먹구구식 물음이었다. 그래서인지 대화는 생각보다 짧게 끝났다. 그리고 잠시 후, 대뜸 ‘힘들어도 절대 포기하지 않을 자신이 있냐’고 물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을 정도로 간절했던 나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조건 괜찮다고 했다. 원래 인내심 하나는 타고났다고, 책임감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어필하면서.

다음 주부터 출근하기로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정리됐다. 당장 3일 뒤였다. 그 사이에 자취방을 구하고 이사를 끝마쳐야 했다. 덕분에 부산으로 돌아오며 취업의 기쁨을 만끽할 여유가 조금도 없었다. 부동산 애플리케이션으로 이사할 집을 먼저 알아봐야 했고 예산이 충분한지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느라 바빴다. 다행히 안동은 지방이라 월세가 비싸거나 계약 조건이 까다롭지 않았다. 면접 다음 날, 집주인과 직거래로 집을 계약했고, 이틀 뒤에 이사했다. 그리고 3일 뒤에는 사무실로 출근했다. 서울로 올라가고 싶었는데, 정신을 차려 보니 연고 하나 없는 안동이었다. 서류 지원부터 사무실 출근까지, 1주일도 채 걸리지 않았다.

시작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회사는 공공기관의 홍보와 마케팅을 대행하는 곳으로 주로 20대 청년을 타깃으로 삼았다. 그런데 정작 청년인 직원을 챙기지 않았다. ‘젊었을 땐 사서 고생한다’고 당연하게 생각했다. 아무리 6개월의 수습 기간 후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조건이라지만 최저임금에 가까운 급여가 책정됐다. 복지나 추가 지원은 꿈도 꾸지 못했다. 그런데도 월급에 비해 업무 강도는 만만치 않았다. 우선 주말 출근이나 야근이 잦았다. 1박에 걸친 행사를 진행할 땐 꼬박 밤을 새웠고, 저녁에 시작되는 강연이 끝나면 시침은 어김없이 자정 부근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사수’라 부르며 따를 만한 상급자가 없었다. 면접 때 뵈었던 팀장님은 입사 후 3주 뒤에 돌연 퇴사했다. (대표님과의 불화가 사유였다.) 게다가 업무를 총괄하던 편집장님도 1주일 뒤에 연이어 회사를 떠났다. 그때부터 내 또래 직원 한 명과 고군분투하며 업무를 쳐냈다. 체계적인 교육은커녕, 하나부터 열까지 알아서 해야 했다. 여긴 유배지나 다름없다고, 대체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 여기까지 떠밀린 거냐고 자조 섞인 농담을 던지는 이유였다. 상황이 그렇다 보니 이후에 충원된 직원들도 2개월을 버티지 못하고 도망치듯 회사를 그만뒀다. 근속 연수가 아니라 근속 월수, 근속 일수를 세야 할 지경이었다.

어쨌든 내가 진행한 프로젝트의 성과가 좋았고 고객사에서도 과업 연장을 요청했기에 정규직 전환이 어렵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회사는 3개월 더 일해보고 정규직 전환을 결정하자고 충격적인 제안을 건넸다. 정규직을 빌미 삼아 노동력을 착취한다고 그때야 뒤늦게 알아차렸다. 처음부터 안동에서 6개월간 잠시 일할 직원을 뽑을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여기에 발을 들이는 순간, 급여를 적게 받더라도 주말 밤낮 가리지 않고 일하다 소모품처럼 교체될 운명이었다. 청년을 위한 홍보와 마케팅을 하는 회사, 허나 실상은 ‘블랙기업’에 불과했다. (가족경영, 소통 부재 등은 덤이다.) 그래서 계속 일하는 건 어려울 것 같다고, 계약이 끝나는 즉시 퇴사하겠다고 뜸도 들이지 않고 대답했다. 구직은 그렇게나 어려웠는데 퇴사는 말 한마디면 가능했다.

서울까지 올라가지 못하고
안동 찍고 다시 부산으로

6개월. 그리 길지 않은 안동에서의 첫 직장생활이 허무하게 끝났다. 서울에서 그토록 일하고 싶었는데, 퇴사가 결정되고 마지막 하루, 그러니까 퇴사 서류에 사인하고 인수인계 파일을 넘기고 송별회를 치르는 그 날에 와서야 겨우 서울 사무실에 들를 수 있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 내 선택과 그에 따른 결과를 돌이켜 보며 몇 가지를 깨달았다. 먼저, 첫 시작이 중요하단 사실을 간과했다. 추위에 쫓기다 보니 맞지 않은 옷을 입고 단추마저 잘못 끼운 모양새랄까. 하루빨리 취업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앞뒤 따져보지 않고 입사한 게 문제였다. 면접을 보러 오라던 전화부터 계약 조건까지 이상한 점 투성이었는데 잘 살펴보지 않았다. 아무리 급해도 피해야할 곳이 있었다.

무엇보다 앞으로 몸담을 ‘홍보’라는 분야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았던 게 컸다. 무슨 일을 좋아하고 또 하고 싶은지 충분한 성찰이 부족했다. 솔직히 말해 그 당시의 난, 뭐든 ‘일’만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다 보니 입사 초기 여러모로 힘들었지만 어렵게 잡은 기회라고 생각해 미련스레 버텼다.

하지만 업무적으로 깊이 있는 배움을 얻지 못해 크게 성장할 수 없었다. 게다가 6개월 정도의 경력은 어디 이력서에 추가하기도 민망한 수준이라 이후 구직과정에서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했다. 규모가 작은 에이전시(대행사)이다 보니 인하우스에서는 오히려 무시하는 경향이 강했다. 결국 첫 직장에서의 경험은 이후에 그 어떤 도움도 되지 않았다. ‘나와 맞지 않는 곳이다, 이건 정말 아니다’라고 생각했을 때, 빠르게 그만둘 용기와 결단이 필요했다.

그렇게 그동안 불어난 세간살이와 함께 짐짝처럼 부산으로 되돌아왔다. 그래도 크게 걱정은 하지 않았다. ‘여기 아니면 일할 곳이 없겠어?’라고 자만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할 곳이 없었다. 제법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구직은 어려운 일이었다. 타들어 가는 속도 모르고 또다시 1년이 하릴없이 지났다.

부산촌놈이 깨달은 것
1. 조급함에 쫓겨 취업을 결정하지 말자 기업에 대한 신중한 탐색이 필수다. 겉만 번지르르한 곳도 많다. 오늘 다룬 회사도 잡O래닛 평점이 4.6이었다. (이 정도면 구글 아냐…?)
2. 느리더라도 제대로 시작하는 게 중요하다. 업에 대해 충분히 고민하자.
3. 이건 정말 아니다 싶다면? 빠르게 그만두는 게 용기 있는 결단이다.

(다음 편에 계속)

20대의 끝과 30대의 처음을 타향, 서울에서 보내고 있다. 처음엔 독립이 마냥 기뻤는데, 집을 떠나 낯선 곳에 자리 잡는 과정이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다. 그래도 홀로 사는 삶이 익숙해지자 차츰 주변에 눈이 돌아갔다. 그때부터 적금, 청약 같은 기본적인 재테크부터 시작해 주식, 해외 ETF 투자까지 온갖 걸 경험했다. 정부 지원이나 정책도 꼬박꼬박 챙겨가며 아등바등 살았고. 피나는 노력의 결과 이제 어느 정도 숨통은 틔우고 산다. 하지만 돌이켜 보니 누가 미리 좀 알려줬더라면 좋았을 일이 수없이 많다. 그래서 이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며 쓴, 그때는 몰랐고 지금은 아는 이야기이다. 에디터 쿨럭(부산 촌놈)의 짠내나는 상경기는 격주 목요일 연재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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