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떠나기가 이렇게나 힘들다니 - PUNPUN

집 떠나기가 이렇게나 힘들다니

부산촌놈상경기 1화

지긋지긋한 부산을 떠나
곧 죽어도 서울로 갈 거라고

어릴 적, 가장 먼저 자리잡은 꿈 중 하나가 어른이 되면 서울로 올라가겠단 거였다. 이유는 간단했다. 유독 사춘기가 빨리 찾아왔던 나는, 어릴 적부터 부모님과 사이가 썩 좋지 않았다. 게다가 한 살 터울의 여동생과 사소한 것을 놓고 말 그대로 하루가 멀다 하고 피 터지게 싸웠다. 예를 들면 컴퓨터나 TV 채널 쟁탈권, 유치하기 짝이 없는 말다툼, ‘내 만 원 누가 가져갔어?’ 논란 등. (미안해 그때 나였어…) 거기에 낀 일곱 살 어린 막둥이까지, 좁은 집에 5명이 옹기종기 모여 살던 그땐 아침마다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그래서 일찌감치 결심했다. 이 답답한 집에서 하루빨리 벗어나겠노라고. 누구의 잔소리도, 소음도, 살을 맞대고 사는 스트레스도 없는 곳으로 훌훌 떠나겠다고. 그것도 우리나라의 중심 서울로 말이다. 실천계획은 딱히 거창할 게 없었다. 성인이 되기 전까지는 독립할 방법이 요원하니, 스무 살이 되면 일단 서울 소재의 대학교로 진학하겠단 게 목표였다. 어쨌든 부산-서울을 통학할 순 없으니까. 그렇게 수능(너머 부산 탈출)만 바라보며 꾹 참았다.

기약 없이 밀린 상경의 꿈

하지만 그해 수능 시험은 완전히 망했다. 아, 망해도 너무 망했다.

수리에 취약한 나였지만, 이 정도 평균등급으로는 인서울은커녕 지방국립대도 간당간당하다는 계산이 뚝딱 떨어졌다. 불행은 도미노처럼 와르르 쏟아지며 계획을 무너트렸다. 수시 전형으로 원서를 넣은 논술 시험도 모조리 탈락한 것이다. 예상 못 한 결과였다. 정시든, 수시든, 뭐가 됐든 서울로 갈 줄 알았다. 꼴도 보기 싫은 성적표를 두고, 재수할 지 말지를 한참 고민했다. (집을 벗어나) 서울로 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으니까.

하지만 내겐 선택지가 없었다. 아직 학생인 동생 둘의 학원비에 더해 내 재수 비용까지 추가로 감당할 만큼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못했다. 그뿐만 아니라 내가 대학교에 입학했던 2009년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여파가 여전해, 대내외적인 상황이 여전히 나빴다. 그래서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서울 한 곳, 부산 한 곳에 원서를 넣었다. (실망한 나머지 남은 한 번의 기회는 그냥 포기해버렸다.) 전자는 예비 번호가 세 자릿수였던 반면 부산에 있는 국립대학교는 불행 중 다행으로 단번에 합격했다.

결국 초, 중, 고에 더해 대학교까지 부산에서 다니게 됐다. 인생의 2할만 부산에서 보내고, 서울에서 지내겠다는 꿈은 시작부터 무기한 연기되었다. 그해 겨울, 아는 것도 틀리고, 찍은 것도 당연히 틀린 시험을 원망했고, 죄 없는 가족에게 온갖 히스테리를 분출했다. 지금 돌아보니 창피하고 죄송하기 그지없다.

서류에 문제라도 있나요?
면접 보기 왜 이렇게 힘들죠?

일단 ‘서울에서 대학교 다니기 플랜’은 처참히 실패했다. 그렇다면 직업이라도 서울에서 구해야 부산을 떠날 수 있었다. 하지만 졸업할 즈음엔, 극심한 취업난으로 일자리 얻기가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려웠다. (나 혹시 저주받은 세대인 걸까…) 친구들과 카페에 모여 하루에도 몇 건의 자소서를 썼지만 돌아오는 건 지긋지긋한 불합격 문자뿐이었다. 면접은 고사하고 서류 전형에서만 수십 번의 고배를 맛봤다.

그러다 온종일 카페를 차지하던 친구들이 하나둘 ‘취뽀’에 성공하기 시작했다. 날이 갈수록 조바심이 들불처럼 걷잡을 수 없이 번졌다. ‘이러다 나만 취업 못 하는 거 아닌가?’ ‘부산에서 뭐 하고 먹고살지?’ 등 온갖 생각이 다 들었다. 연이은 실패로 자존감이 바닥을 기어 거의 반포기 상태에 접어들 무려입니다. 그런데 낯선 번호로 전화 한 통이 걸려 왔다. 전날 마지막으로 서류를 넣었던, 유스마케팅을 주로 하는 서울 소재 홍보 회사였다.

“안녕하세요, 쿨럭님 맞으시죠? 저는 00000 대표 000입니다. 저희가 쿨럭님 지원서류를 검토해봤는데, 면접을 한번 보면 좋을 거 같아서요.

드디어 면접이다! 소리 없는 환호성이 카페 안을 가득 채웠다.

찰나의 순간이지만 동시에 의심도 같이 새어 나왔다. 왜 대표가 직접 전화를 하는 거지? 어쨌든 면접 보라는 연락은 처음이라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는데, 다음 말이 더 이상했다.

“면접 장소는 안동입니다, 이번 주 목요일에 괜찮을까요?

아니, 오늘이 화요일인데 이틀 뒤에 면접을 바로 보자고? 잠시만, 서울도 부산도 아닌, 안동에서 면접을 보자고?

(다음 편에 계속)

20대의 끝과 30대의 처음을 타향, 서울에서 보내고 있다. 처음엔 독립이 마냥 기뻤는데, 집을 떠나 낯선 곳에 자리 잡는 과정이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다. 그래도 홀로 사는 삶이 익숙해지자 차츰 주변에 눈이 돌아갔다. 그때부터 적금, 청약 같은 기본적인 재테크부터 시작해 주식, 해외 ETF 투자까지 온갖 걸 경험했다. 정부 지원이나 정책도 꼬박꼬박 챙겨가며 아등바등 살았고. 피나는 노력의 결과 이제 어느 정도 숨통은 틔우고 산다. 하지만 돌이켜 보니 누가 미리 좀 알려줬더라면 좋았을 일이 수없이 많다. 그래서 이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며 쓴, 그때는 몰랐고 지금은 아는 이야기이다. 에디터 쿨럭(부산 촌놈)의 짠내나는 상경기는 격주 목요일 연재 예정!

매주 월요일 배달되는 유익한 이야기,
푼푼레터 구독하기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약관에 동의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