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블의 역사

역사를 모르는 투자자는 같은 실수를 하게 된다.

오늘도 오르내리는 주식창을 본다. 초 단위로 바뀌는 숫자들을 보고 있자면 괜히 마음이 들뜬다. 지금이라도 저 시장에 뛰어들면 뭔가 대박을 노릴 수 있을 거 같은 착각에 사로 잡힌다. 그렇다.  투자의 역사에는 언제나 인간의 탐욕이 배어 있다. 지난 역사를 둘러보면 이런 일들은 허다하다. 하지만, 인간은 똑같은 실수를 또 매번 반복한다. 역사는 매번 돌아오지만,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돌아오기에 우리는 같은 탐욕에 빠져 항상 다른 실수를 저지른다. 금융에서도 역사를 알아야 하는 이유다. 

1630년대, ‘튤립’이라는 이름의 광기

역사적으로 세계 최초의 버블로 손꼽히는 건 특이하게도 유가 증권이 아닌 튤립이었다. 17세기 들어 신대륙에서 은이 지속적으로 유입되면서 유럽에는 가격혁명이라고 불리는 심각한 인플레이션이 시작되었다. 가만히 자산을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자산의 가치가 떨어지는 상황이니 어떻게든 다들 투자를 할 대상을 찾고 있었다.

이 시기에 유럽의 정원에 심어져 있는 꽃들은 대부분 지중해의 꽃이었는데 그중에서도 사랑받는 건 튤립이었다. 특히 네덜란드에서는 튤립의 품종을 다양하게 개종하여 2000 종류 이상의 튤립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튤립 애호가 사이에서는 귀한 품종의 튤립 구근이 비싸게 팔리기 시작했다.

세계 최초로 증권거래소를 만든 나라답게(네덜란드는 1602년에 증권거래소를 설립했다. 1634~37년 사이 애호가들을 넘어 일반 서민들까지 튤립 투자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특정 튤립은 하나에 3000길더에 이르기까지 했는데, 3000 길더면 당시 유복한 상인의 1년 치 수입에 달했다고 한다. 하지만 1637년 튤립 가격은 폭락하기 시작하고, 순식간에 1/100의 1의 가격으로 떨어졌다고 한다.   

튤립
이렇게 한없이 오를 줄 알았다고 한다

1720년, ‘국채’가 낳은 유럽의 버블 

18세기 들어 유럽은 전쟁의 소용돌이 사로잡혔다. 유럽 내에서 패권을 장악하기 위한 전쟁은 물론이고, 신대륙에서 식민지를 개척하기 위한 전쟁도 끊임없었다. 특히 유럽의 강대국인 영국과 프랑스는 이 전쟁들의 한가운데 있다 보니 자연스레 전비를 모집하기 위한 국채를 발행할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아무리 안정적인 국채라고 해도 대량으로 발행을 하다 보면 그걸 사줄 사람을 찾기가 힘들 수밖에 없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나온 아이디어가 주식회사가 국채를 인수하고, 그 회사는 인수한 국채만큼 주식을 발행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었다. 대신 주식을 비싸게 팔 수 있도록 그 주식회사에 무역 독점권 등 다양한 특권을 부여하였다.  회사 입장에서는 국채보다 비싸게 주식을 팔기만 하면 수익이 나는 장사였다. 그런 이유로 영국에서는 1711년에 사우스시 컴퍼니(South Sea Company), 프랑스에서는 1719년에 미시시피 컴퍼니 (Mississippi Company)가 그렇게 차례대로 생겨난다.

무역의 독점권을 가진 이 회사의 주식은 지금으로 따지자면 엄청난 성장주로 받아들여졌고, 사람들이 주식을 사기 시작하면서 급등하기 시작한다. 미시시피 컴퍼니의 경우 1719년 여름에 3천 리브르였던 주가는 1720년 초에는 1만 리브르까지, 5월에는 1만 2500리브르까지 상승한다. 그러나 같은 해 12월에는1000리브르까지 폭락하게 된다.  사우스시 컴퍼니 또한  1720년 1월 100파운드에서, 같은 해 7월에는1000파운드를 넘었다가 다시 200파운드까지 폭락하게 된다. 아무리 무역 독점권 등의 특혜를 받더라도, 실제로 주가를 뒤받쳐줄 만한 실적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을 눈치챈 투자자들의 투매 때문이었다. 

재미있는 건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아이작 뉴턴도 이 투기 열품에 동참하여 사우스시 컴퍼니에 투자했다가 큰 재산을 날리게 된다. “천체의 움직임은 계산할 수 있어도, 인간의 광기는 도저히 계산할 수 없다.”라는 말을 남겼다는 후문이 전해진다. 그리고 ‘버블(Bubble)’이라는 단어가 이때 처음 생겨났다.

아이작 뉴턴
아이작 뉴턴은 당시 영국의 조폐국 감사까지 했었다. 그래도 주식은 …

1980년대, 엔고가 일으킨 일본의 버블 

1980년대 초반 일본 경제는 상승일로를 걷고 있었다. 미국의 경상적자는 한없이 늘어나고 있는 반면, 일본의 흑자는 1984년 들어 350억 달러까지 늘어났다.  미국의 레이건 행정부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환율 조정’을 통해 무역 적자를 해소하려고 했다. 그리고 1985년 9월 22일 뉴욕 플라자호텔에서 미국, 프랑스, 독일, 일본, 영국의 재무 장관 및 중앙은행 총재 회담을 개최하게 된다. ‘플라자 합의’로 불리는 이 회담을 통해 참가국들은 달러 약세를 서로 합의하게 된다. 회담 이전에 1달러에 242엔이었던 엔화 환율은 1987년에는 120엔 수준까지 떨어지게 된다. 거의 두 배에 이르는 엔화 절상이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일본 수출 기업의 입장에서는 가만히 앉아서 뒤통수를 맞는 셈이었다. 똑 같은 물건을 만들어서 팔려고 해도 이제는 2배의 가격을 받아야 같은 수익이 나니, 가격경쟁력 약화로 경제 활동이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일본의 금융당국은 이런 상황을 금리 인하를 통해 경기 부양을 하려 했다. 하지만 정작 이렇게 시중에 풀린 자금들이 부동산과 주식 시장으로 흘러 들어가면서 버블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니케이지수는 1985년 1만 2천에서 1990년에는 4만에 가깝게 상승하였고, 부동산의 경우 그 자산총액이 1985년부터 1990년 사이에 4배나 가격이 뛰었다. 심지어 일본 지가의 총액이 미국 지가 총액의 3배에 이르는 상황이 연출되었다. 이후 1990년 버블이 터지면서 일본은 장기 침체에 빠져들게 된다. 

주식과 부동산이 함께 버블에 사로잡혔다

1995년, 닷컴 버블의 시작

1995년 8월 9일, 인터넷 브라우저 업체인 넷스케이프(Netscape)는 IPO에 성공한다. 최초의 웹브라우저를 만든 넷스케이프의 주가는 거래 첫날에만 주가가 세배가 치솟았다. 물론, 단순히 주가가 많이 올랐다는 이유만으로 버블이라고 할 수는 없다. 기업 가치에 비해 저렴한 가격으로 상장되었다면 그럴 수도 있으니까. 다만 특이한 점은 넷스케이프는 적자에 허덕이는 기업이라는 점이었다. 그전까지는 기업이 상장하기 위해서는 수익을 창출하고, 그 수익을 기반으로 가치 평가를 받은 후에 상장을 했었다.

그런데 그냥 미래의 성장 가능성만 보여줘도 투자가 들어오고, 창업자들은 기업의 실질적인 성과와 별개로 IPO를 통해 벼락부자가 되는 케이스가 이때부터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런 닷컴 버블은 1995년부터 2000년까지 이어지면서, 1995년 1월에는 840대에 머물던 나스닥 지수는, 2000년 3월에는 5000을 넘어섰다. 그러나 닷컴 기업들의 실적이 뒷받침되지 못하면서 나스닥지수는 1년 후인 2001년에는 2000선, 2002년 후에는 1300선까지 급락하게 된다.

최고점 대비 1/5 토막이 났다

이 닷컴 광풍은 우리나라도 피해 가지 못했다. 1996년 7월 1일에 출범한 코스닥시장은 2000년 3월 10일에는 2834.40을 돌파했다. 최근 10년간 코스닥의 최고점이 932이었다는 걸 생각하면 그 버블이 얼마나 심했는지 알 수 있다. 역대 최고가를 기록했던 코스닥 종목 톱 10을 고르면 그중 7개가 2000년에 나왔을 정도다. 당시 최고가 종목은 리타워텍으로 2000년 4월 4일에 163만 5천 원을 기록했다. 최저가 대비 상승률이 2만 123.46%라고 한다. 현재는 상장 폐지되었다. 

탐욕과 공포 사이  

도취감에 기여하는 것은 우리 시대나 과거에는 거의 주목되지 않았던 두 가지 추가적인 요소들이다. 첫 번째 요소는 금융 기억의 극단적인 단기성이다. 결과적으로 금융계의 재앙은 금방 잊힌다. 더 나아가 불과 몇 년이 지나지 않아 똑같거나 비슷한 상황이 다시 발생하면, 종종 젊고 늘 확신에 차 있는 신세대는 이 상황을 금융계와 더 크게는 경제계에서 엄청나게 혁신적인 발견인 양 생각한다. 

경제학자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 <금융 도취의 짧은 역사> 중

인간은 의외로 쉽게 잊는다. 그래서 쉽게 탐욕에 빠져 투자하고, 또 쉽게 공포에 빠져 투매한다. 그 시장의 한 가운데 있을 때에는 시장의 흐름과 다른 생각을 하기가 쉽지는 않게 마련이다. 어쩌면 그래서 금융에서도 역사를 통해 지금의 시장을 한 발짝 떨어져서 지켜보는 시선이 필요한 것인지도 모르겠다.